부엌 문을 열자 봄볕이 무성하다.


 '하 ! 어느새...'
 부엌앞 뜰은 항상 햇빛이 갇혀 있다. 지난 겨울 우리 식구는 그곳에 고양이가 새끼를 낳은 것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었다. 아주 보송보송한 새끼 다섯 마리가 문틈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 뒤로 어미가 우리를 쳐다보는 눈빛이란...

 고양이 가족과 우리 가족의 눈이 서로 부딪쳤다. 어미 고양이는 위협을 느낀 듯 했다. 금강이는 금새 달려들어 새끼 고양이를 안을 태세다. '쉿' 나는 아이를 가로막았다. 어미 고양이도 잠시 동작을 멈춘다.


 "애들아. 우리 휘파람을 불자..."
 순간 아이들이 알아챈다. 내가 먼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나에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휫 휘이..."
 어미 고양이가 살그머니 주저 앉는다. 사실 고양이는 휘파람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위협인가를 판별하기 위해 귀를 모으는 것이다. 대개 소리가 들리면 움직임을 멈추기 마련이다.
 그리고 살그머니 문을 닫았다. 부엌 앞 처마밑에 고양이가 와서 새끼를 낳으리라고 꿈에도 생각치 못했는데...워낙 따뜻한 곳이라인가. 사실 우리는 겨우내 부엌문조차 열지 않고 지냈던 것이다. 처마밑 스티로폼 박스 속 옷가지로 집을 짓고 살던 고양이 가족은 며칠 후에 떠났다.

 고양이가 떠난 다음 그것에 봄이 찾아들었다. 아마 고양이 가족이 봄을 데려 왔을거다. 봄은 거기서 마당과 숲, 들판으로 한창 옮겨간다. 나는 그렇게 봄과 대면했다. 참 반가운 만남이다. 더우기 우울한 세상 풍경에 조금은 지친 듯 했는데...,


 봄을 데려다 준 것은 고양이가족만이 아니다. 마당가의 오가피나무들도 봄의 전령이다.  


 마당에 나선 순간
 "오가피 잎이 필 시간이구나..."
 작은 감동이 일렁인다.
  오가피나무는 움틀 듯 몽울 져 있다.
 기억의 언저리에서 오가피 향내가 훅 끼친다.
 오가피도 나도 추운 겨울 잘 이겨내고 함께 봄을 맞게 된 것이다.
 그건 희망을 알리는 징조 같다. 오가피 !! 문득 입안에 침이 돈다. 나는 그동안 좋아하는 친구들에게만 오가피를 권유해왔다.이건 나물이라고해야할지, 채소라고해야할지 구분이 안가지만...


 뒷산에서 옮겨 심은 오가피 20여그루는 많은 양의 야채를 제공한다. 오가피 맛은 인삼과 비슷하지만 더 떫은게 특징이다. 데쳐서 먹기도 하고 그냥 먹기도 한다. 다른 채소와 섞어 먹어도 좋다. 상추에 민들레, 오가피, 고들빼기를 얹어 먹는 맛은 아주 일품이다. 그래서 가장 정성 들여 가꾸는 식물이 오가피다.


 다시 텃밭을 둘러본다. 왠지 팔뚝이 욱신거린다. 200여평의 텃밭에 채소를 심을 구간을 짐작해보고, 각 칸을 나눈다. 그리고 지난해 심었던 자리에서 옮겨야 채소밭의 구간도 가늠해본다.
 '고추는 밭 가운데 심었었으니 밭 언저리 도랑가로 옮겨야겠군....' 
 생각도 분주해진다.


 옛날보다 농사시기가 한달 가량이나 앞당겨져 지금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못 심는 것도 있다. 텃밭에 심는 작물은 스무 종류 가량 된다. 10여종류는 주변에서 그냥 채취할 수 있다.우선 상추와 쑥갓, 아웃, 근대, 갓, 호박, 오이, 토마토, 수박, 참외, 옥수수, 고추, 가지, 콩, 고구마, 파 등등이다.
 취나물, 드릅, 오가피, 부추, 돌나물, 산마늘 등은 주변에 한번 심어놓고 매년 수확만하는 작물들이다. 농사를 짓는데 있어서 시간이 생명이다.


 어느 해인가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이른 초봄에 상추씨를 뿌린 적이 있다. 그런데 보름이나 늦게 씨를 뿌린 이웃집 상추가 돋아나고나서 닷새가 지나서 싹이 텄다. 일찍 심으면 일찍 피어날 것이라는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
 "다 때를 맞춰 씨 뿌리고 거두는 거지. 일찍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걸 모르다니..."
 이웃집 아저씨는 농사 경험이 있다고 자부해온 나를 한동안 놀렸다. 아주 간단한 이치도 모른다고. 이런 경험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종종 나타난다.사람도 때가 무르익어야 성장한다.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경험, 시간을 주고 기다려야 한다.자연이나 사람의 이치는 매 한가지처럼 보인다.


 그런 경험도 있다. 주변에 간혹 초보 전원생활자들중에는 씨를 뿌리고 곧바로 물을 준다. 씨앗에 물을 주면 흙이 굳어 싹을 튀우는데 애를 먹는다. 그래서 간혹 구부러진채 피어나는 식물들이 있다. 흙 표면이 물로 해서 굳어버리면 산소 공급이 안 되고 각질을 뚫느라 고생한 채소가 나중에 시들하게 자란다.
 튼튼한 모종을 갖고 싶다면 채소에 일체 물을 주지 않아야 된다. 때론 간섭이 아이들의 성장을 방해하듯이 말이다. 대신 막 성장을 시작할 때는 충분한 영양을 줘야한다.


 그렇다고 늦어서는 더욱 안 되는게 농사다. 다 심을 때가 있다. 시간을 거슬러 욕심을 부려도 안 된다. 차분히 순응하고, 인내하면서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농사를 실패하게 된다. 준비와 과정, 수확까지 어느 한순간도 게을러서는 지을 수 없다.


 실제 주말 농사꾼이 겪는 문제는 시간이다. 밭 몇평도 돌볼 여유가 없어 허덕이는 경우가 많다. 주말에도 결혼식이다, 운동이다 이런 저런 교제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제때 돌보지 못해 농사를 망치기도 한다. 사실 내가 농사를 제대로 지어본 것은 전원생활 십삼년 중 두어번 정도인 것 같다.


  다시 씨 뿌려야할 시간에 내가 심고 가꿔야할 것들을 생각해본다. 무엇을 어떻게 심어야 하나 ? 그리고 나의 가을은 어떤 모습일런지 차분히 들여다 본다. 이제 '주말농사꾼'의 봄날도 상념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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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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