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으로 인플레 압력 가중…亞 '고유가·통화약세' 이중 취약성 노출"[2026금융포럼]
시라이 사유리 日 게이오대 경제학 교수
'2026 아시아금융포럼' 특별강연
"에너지·통화 가치 하락 충격…한일 중앙은행 정책 상충관계 심각"
"AI로 에너지 수요 폭증 '아세안 그리드'에 한일 기술·재정 공조해야"
중동전쟁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이 커진 가운데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에너지 가격 상승과 통화가치 하락이라는 '이중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러한 공급 측면의 충격이 아시아 각국의 재정·통화정책을 심각하게 제약하며 정책 조합의 딜레마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라이 사유리 일본 게이오대 경제학 교수(전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 위원)는 21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 서울에서 아시아경제 주최로 열린 2026 아시아금융포럼(Asian Financial Forum 2026)에 참석해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 변화와 아시아 금융시장의 진화하는 역할'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시라이 교수는 "최근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정학적 전개는 에너지 안보가 세계 경제는 물론 아시아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며 이같이 밝혔다.
유가 상승·통화 가치 하락 '이중 충격'…통화정책 딜레마 커져
시라이 사유리 게이오대학교 정책관리학부 경제학 교수가 21일 서울 중구 조선호텔에서 아시아경제 주최로 열린 '2026 아시아금융포럼'에 참석해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 변화와 아시아 금융 시장의 진화하는 역할’이란 주제로 특별강연 하고 있다. 2026.5.21 강진형 기자
시라이 교수는 중동발(發) 에너지 리스크가 단순한 유가 변동을 넘어 인플레이션, 환율 변동성, 거시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직결되는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했다. 특히 최근의 유가 상승세가 장기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영향력이 약화하면서 회원국들이 기존 쿼터제를 얼마나 준수할지 불분명해진 상황"이라며 "향후 휴전이 성립되더라도 물리적인 공급 제약은 상당 기간 계속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에너지 공급망의 균열은 중동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 경제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시라이 교수는 "과거 유가를 지탱하던 담보 체제의 붕괴는 가격 측면에서 더 큰 변동성을 야기한다"며 "미국과 일본, 한국 등에서 인플레이션이 다시 머리를 드는 현상을 목격하게 될 것이며, 가까운 미래에 물가상승률이 둔화되더라도 절대적인 가격 수준은 고점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여기에 중동 리스크로 안전 자산인 달러화 선호 현상이 강해지면서 아시아 주요국의 통화가치가 급락한 점도 수입 비용을 밀어 올리는 요인으로 꼽혔다. 시라이 교수는 "일본 엔화는 아시아에서 가장 가치가 하락한 통화이며 그 다음이 한국 원화, 인도 루피화 순"이라며 "아시아는 대외 에너지 가격 리스크에 통화가치 하락까지 겹친 '이중의 취약성'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마땅한 정책적 대응 카드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통상 물가가 오르면 기준금리 인상이나 재정 긴축으로 대응하지만 공급 충격 앞에서는 약발이 듣지 않는다는 게 그의 평가다. 시라이 교수는 "인플레이션 상승은 장기 국채 수익률(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국가부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므로 정부가 대규모 재정확장 정책을 펴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역시 딜레마에 걸렸다고 짚었다. 시라이 교수는 "중앙은행 역시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공급측 쇼크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정책 해법을 제시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중앙은행이 환율과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면 되레 국내 실물 경제를 위축시키는 부작용만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경제 성장 하방 압력을 피할 것인가 사이의 상충 관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라이 교수는 아시아 국가의 통화가치 하락 대응에 대해서도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통화가치 하락 속도를 늦출 수는 있겠지만 국내 수요를 억제하고, 한편으론 정부 국채 수익률을 높여 부채 상환 비용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대외적 목표와 대내적 정책 간 긴장 관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물론 재정·통화정책 간 조합에서도 문제가 복잡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AI로 에너지 수요 폭증, 대응 위해선 '아세안 그리드'에 한일 공조해야
시라이 사유리 게이오대학교 정책관리학부 경제학 교수가 21일 서울 중구 조선호텔에서 아시아경제 주최로 열린 '2026 아시아금융포럼'에 참석해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 변화와 아시아 금융 시장의 진화하는 역할’이란 주제로 특별강연 하고 있다. 2026.5.21 강진형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시라이 교수는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이 경제 성장의 새로운 '구조적 제약' 요인으로 부상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AI는 엄청난 전력과 에너지 수요를 창출하고 있으며 이는 에너지 부족과 가격 변동성 확대, 탄소 규제 리스크로 이어지는 형국"이라며 "결국 에너지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가 국가 경제 경쟁력의 핵심이 됐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아세안(ASEAN) 국가들이 추진 중인 초국경 전력망 사업인 '아세안 그리드(Grid) 프로젝트'에 한국과 일본이 적극적으로 공조할 것을 제안했다. 시라이 교수는 "아세안과 인도 등은 급격한 디지털화로 에너지 수요가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베트남은 태양광에, 아세안 다른 지역은 수력 발전에 강점이 있어 이 전력망들을 서로 연결하는 작업이 한창"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과 일본이 여기에 기술적·재정적 지원을 제공한다면 아시아 역내 에너지 제약 문제를 함께 해결하며 서로 윈윈(Win-Win)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국경 간 결제망 실험 다변화…달러 패권 점진적 파편화
마지막으로 시라이 교수는 국가 간 결제 시스템의 기술 발전이 장기적으로 달러화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현재 아세안과 인도, 아랍에미리트(UAE) 등지에서 QR코드 기반의 국경 간 결제 연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며 "앞으로는 거대 경제국들이 UAE나 인도 같은 자원 수출국과 직접 통화로 결제하려는 경향이 점점 더 강해질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현재는 엔화와 원화가 거래하려면 중간에 달러화를 거쳐야 하지만, 아시아 내 결제 연동망이 촘촘해지면 궁극적으로 양자 간 직접 거래가 늘어날 것"이라며 "결제 인프라의 혁신이 통화의 사용 형태를 재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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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 교수는 "기존 달러화와 스위프트(SWIFT) 기반의 글로벌 시스템이 단번에 붕괴되지는 않겠지만, 미래에는 복수의 대체 결제 시스템이 병렬적으로 발전하면서 달러 패권의 부분적 파편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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