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 0.8%, 대폭 하향조정
기준금리 연 2.50%…0.25%P 인하
"건설투자, 성장률 전망 0.4%P 낮췄다"
"수출, 美 관세 영향 예상보다 커 둔화폭 확대"
美·中갈등 재점화 시 올 성장률 0.7% 그칠 것
한국 경제에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드리웠다. 29일 한국은행은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에서 0.8%로 대폭 끌어내렸다. 소비와 건설 경기를 중심으로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는 데다, 미국발 관세 영향에 한국 경제의 큰 축인 수출까지 기존 예상보다 크게 타격받을 것이란 전망에서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내수 위축과 수출 둔화라는 겹악재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2.50%로 인하했다.
"건설투자, 성장률 전망 0.4%P 낮췄다…수출, 美 관세 영향 예상보다 커 둔화 폭 확대"
한은은 이날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 2월 전망치(1.5%)에서 단숨에 0.7%포인트를 낮추며 반토막을 낸 셈이다. 한은이 연간 전망치를 0.7%포인트 이상 조정한 건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8월 그해 전망치를 -0.2%에서 -1.3%로 1.1%포인트 낮춘 후 5년 만에 처음이다.
이는 내수 부진이 심화한 데다 관세 전쟁에 따른 글로벌 교역 환경 악화와 수출 둔화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다. 금통위는 내수 부진은 점차 완화하겠지만 그 속도는 더딜 것으로 봤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미·중 무역 협상이 진전되고 정부 추가경정예산안이 확정됐음에도 성장률을 0.7%포인트 낮추게 된 데는 건설의 영향이 가장 컸다"며 "건설투자는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 정도지만 건설경기 침체 심화로 감소 폭이 예상보다 커지면서 성장률 전망치를 0.4%포인트 정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민간소비 역시 1분기 실적이 부진했던 데다 2분기 회복세도 당초 예상보다 더딜 것으로 보여 연간 성장률을 0.15%포인트 정도 낮추는 것으로 봤다고 짚었다.
수출 역시 석유화학·철강 등 비IT 부문이 글로벌 경쟁력 약화 등 구조적 요인으로 부진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미국발 관세 충격 영향이 기존 전망에서 반영한 것보다 커졌다는 점이 수출 둔화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됐다. 이 총재는 "수출은 2월 기본 전망보다 높아진 미국 관세율의 영향으로 둔화 폭이 크게 확대됐다"며 "성장률을 추가로 0.2%포인트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美·中 갈등 재점화 시 올 성장률 0.7% 그칠 것…美 상호관세 발효 차단되면 0.9%↑
이번 한은 전망치 0.8%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1.5%), 아시아개발은행(ADB·1.5%), 국제통화기금(IMF·1.0%) 등보다 낮은 수치다. 지난달 말 기준 주요 해외 투자은행(IB) 8곳의 평균 전망치(0.8%),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이달 제시한 전망치(0.8%)와 같다.
한은은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을 1.1%, 설비투자 증가율을 1.8%로 전망했다. 지난 2월 전망 대비 각각 0.3%포인트, 0.8%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건설투자 전망치는 -2.8%에서 -6.1%로 큰 폭 끌어내렸다. 재화 수출은 0.9%에서 -0.1%로, 재화 수입은 1.1%에서 0.2%로 각각 조정됐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820억달러로 2월 전망(750억달러)을 웃돌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 관세 영향으로 통관수출이 감소하겠으나 유가 하락, 내수 부진 등에 수입이 더 큰 폭으로 줄면서 지난 전망 대비 흑자 폭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내년 경제성장률은 기존 1.8%에서 1.6%로 하향 조정됐다. 올해와 내년 2년 연속 1% 안팎의 저성장 흐름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다. 물가상승률은 목표치(2.0%)에 근접하게 움직일 것으로 봤다.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은 1.9%로 지난 2월과 같았다. 내년엔 기존 전망(1.9%) 대비 0.1%포인트 내린 1.8% 수준일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은 5월 경제전망에서 미국의 기본 관세율 10%, 품목 관세율 25%가 대체로 유지될 것으로 전제했다. 반도체·의약품 등에 대한 품목 관세도 하반기 중 일부(10%) 부과되는 것으로 가정했다. 이보다 상황이 비관적으로 전개될 경우, 미·중 갈등이 재점화하고 미국 상호관세가 유예 기간 후 절반 정도 다시 높아질 경우엔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각각 0.7%, 1.2%로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무역 협상이 원만히 진행돼 관세율이 올해 말까지 상당폭 인하될 경우 성장률이 올해 0.9%, 내년 1.8%가 될 것으로 봤다. 간밤 미국 연방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에 제동을 건 데 따라 향후 상호관세 발효가 차단될 경우엔 올해 낙관 시나리오(0.9% 성장)와 유사하거나 이보다 성장률이 소폭 확대될 것이라고 한은은 설명했다.
"금리 인하 폭 커질 가능성 있다"…시장선 연말 최종금리 2.00% 전망 우세
한은 금통위는 이날 열린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2.50%로 내렸다고 밝혔다. 종전 연 2.75%에서 0.25%포인트 하향 조정한 것으로 시장 전망에 부합하는 결과다. 금통위는 지난해 10월 3년 2개월 만에 금리를 내리며 인하 사이클로 전환한 후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이달까지 총 네 차례 금리 인하에 나섰다.
이 총재는 이날 "가계부채 증가세와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한 경계감이 여전히 크지만, 물가 안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성장률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해 경기 하방 압력을 완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향후 (최종) 금리 인하 폭이 조금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종금리의 구체적인 수준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그는 "2월 전망 때 금통위원들이 생각했던 금리 패스에 비해서는 더 낮아졌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지난 2월 금리 인하 후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시장에서는 2월 금리 인하를 포함해 올해 금리를 2~3회 낮출 것이라는 게 다수의 의견인 것 같다. (금통위 가정과) 시장 전망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연말 연 2.25~2.50% 수준이므로, 이보다 인하 폭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앞서 아시아경제가 경제전문가 1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말 최종금리는 연 2.00%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가 다수(64.7%)였다.
이 총재는 다만 통화완화에 따른 가계부채 급증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추가 금리 인하가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를 (향후 결정 시)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며 "금통위원들 역시 서울 지역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서 금리를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빅컷(0.50%포인트 인하)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봤다. 이 총재는 "빅컷으로 금리 빨리 낮추면 부동산 흘러가 주택 가격이 오르는 등 코로나19 때 했던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 조절 (필요성)과 금리 정책이 특정 지역 부동산 가격을 자극할 정도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문제(라는 점)에 대해 새 정부와 서로 공감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미 금리차 부담과 관련해선 "격차가 너무 커지면 자본 이동 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지금은 2~3년 전 미국의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 때와 비교해 속도와 환율에 미치는 영향 등이 달라 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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