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텍이어 한미약품도 협업
특허 연장·적응증 확대 전략
글로벌 매출 1위인 머크(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가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과의 협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바이오텍(신약개발사) 위주이던 키트루다와의 병용(두 가지 약물 동시 복용) 임상에 한미약품까지 뛰어들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최근 차세대 IL-2 기반 면역항암제 'HM16390'과 키트루다를 병용하는 임상 1상을 시작했다. 이 임상시험은 한미약품이 스폰서로 총괄을 맡아 진행하고 있으며, MSD는 실험에 필요한 키트루다를 무상으로 공급한다. 한국MSD에 따르면 한미약품 건을 포함해 2020년 이후 체결된 '키트루다' 병용요법 관련 공동 임상 국내 협력은 11개 기업, 14건에 달한다.
한미약품의 신약 HM16390은 면역세포의 분화와 증식을 조절하는 사이토카인 '인터루킨-2(IL-2)'를 기반으로 설계됐다.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잘 자라고, 암세포와 잘 싸우게 도와주는 치료제다. 기존 IL-2 제제인 '프로류킨'이 높은 독성으로 인해 부작용이 심했던 반면, HM16390은 독성을 줄이고 효과를 높이기 위한 변이체로 개발됐다. 이 약물은 종양미세환경(TME) 내 면역세포인 'T세포'를 증가시킨다. 암세포가 있는 종양 미세환경에는 면역세포가 잘 들어가지 못하거나 반응하지 못하는 '콜드 튜머(cold tumor)' 상태를 '핫 튜머(hot tumor)'로 전환해 면역반응을 유도한다. 핫튜머는 콜드튜머의 반대 의미로 종양 미세 환경에 면역세포가 침투해 암세포 공격을 활성화시킨 상태를 말한다.
한미약품 외에도 MSD는 국내 유망 바이오기업들과 파트너십을 통해 다양한 병용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고형암 치료를 위해 '4-1BB'와 'B7-H4'를 동시에 타깃하는 이중항체 ABL103과 키트루다의 병용 임상 1b/2상을 진행 중이다. 티움바이오도 담도암 적응증 확보를 위해 키트루다의 병용 임상 2a상을 진행 중이다. 네오이뮨텍의 면역세포 증강제 'NT-I7'도 키트루다와의 병용 임상 2상에 진입해 있다. 이들 기업은 MSD로부터 키트루다를 무상 공급받으며 공동 임상을 수행 중이다. 면역항암제 시장의 주도권은 단일제보다 병용요법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MSD와 국내 기업들의 협력 확대는 이 흐름 속에서 한국 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준다. 키트루다 이후의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적 접점이기도 하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MSD가 공동임상을 하는 것 자체가 MSD의 선택을 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며 "국내 제약사 입장에선 협업 자체가 글로벌 시장에 간접적으로 역량을 홍보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MSD 입장에서는 특허 만료 이후 리스크 완화를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2028년에서 2030년 사이 주요 국가에서 특허 만료가 예정돼 있어, 병용 요법을 통한 '신규 조합 특허' 확보가 절실하다. 이를 통해 특허 만료 이후에도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키트루다는 2015년 FDA 승인을 받은 이후 현재까지 폐암, 흑색종, 신장암, 방광암 등 20개 이상의 암종에 대해 적응증을 확보하며 글로벌 매출 1위에 올랐다. 키트루다의 지난해 매출은 294억8200만 달러(약 41조원)로 2023년보다 18% 늘었다.
병용 요법의 또 다른 전략적 이점은 기존 치료제의 효과가 낮았던 암종을 타깃할 수 있다는 점이다. 키트루다는 단독으로도 강력한 면역 반응을 유도하지만, 종양이 면역반응을 피하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지녔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병용 전략이 필요하다. 예컨대 종양 미세환경을 억제하는 약물이나,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는 바이오 약물과의 병용은 '면역 저항성'을 낮추고 반응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상임 부회장은 "병용요법 개발로 기존에 처방하지 못한 환자들에게도 처방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며 "이같이 병용요법이 활용되게 된다면 오리지널 약의 특허가 끝난 이후에도 이점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정동훈·최태원 기자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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