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허위 청구·가짜 사고…그 돈은 내 보험료였다]
<'보험사기' 근절 위해선>
④-⑶보험사·소비자 함께 노력해야 "과도한 경쟁상품·보상심리가 사기 부른다"
보험사·정부가 보험에 대한 인식개선 힘써야
"포상금제 확대도 긍정적 효과 불러와"
"지금까지 낸 보험료가 얼만데, 이번 딱 한 번 그렇게 타 먹은 거 가지고 왜 그러나."
보험사기 조사·수사조직이 보험사기꾼으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일부는 불법을 저지르고도 돈 많은 보험사들이 보험금을 내주기 싫어서 자신을 사기꾼으로 몬다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수사기관엔 정부가 왜 보험사 편만 드느냐며 악의적인 민원으로 보복하는 경우도 있다.
그동안 각계 전문가들이 보험사기를 막기 위한 여러 대책을 제안했지만 사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리의 인식전환이다. 꾸준히 보험료를 내고도 몇 번 보험금을 타지 않은 건 자신이 건강하다는 증거지 억울한 게 아니다. 낸 보험료를 미래에 꼭 돌려받아야 할 '본전'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부 저축성·환금성·연금보험과 혼동해서 생긴 오해다.
보험은 어쩔 수 없이 그 자체로 사행성을 내포한다. 적은 보험료로 고액의 보험금 수령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들과 달리 나는 아직 한 번도 못 타먹어 억울하다는 보상심리도 작용한다. 그래서 사기 유혹에 빠지기 쉽다. 보험사가 관리하는 보험금은 사실 나와 같은 처지의 국민 다수가 마련해둔 곳간이지만 보험사 돈으로 잘못 인식하기도 한다. 최근 정부가 보험금 누수가 심각한 실손보험과 자동차보험 개편에 나서자 '정부가 왜 보험사 돈버는 일을 돕느냐'는 비판이 쏟아진 것도 이런 이유다. 이 같은 사실만 봐도 잘못된 인식이 팽배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육·홍보 강화로 보험에 대한 인식제고 힘써야
전문가들은 보험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적극적인 교육·홍보 등을 통해 인식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는 "보험은 많은 사람이 가입해서 사고 난 사람에게 보험금을 주는 '대수의 법칙'을 이용해 환난상휼(어려움을 당했을 때 서로 돕는다)을 하기 위한 제도"라며 "보험료를 냈으면 본전을 받아야 한다는 그릇된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최병규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한국보험법학회장)는 "보험에 대한 잘못된 의식이 보험사기를 확대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의식개혁 캠페인과 교육, 홍보 등을 통해 보험사기가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보험가입자가 보험사에 제출할 진료비 영수증을 위조한 모습. 정상영수증 틀을 토대로 세부항목을 감쪽같이 바꿨다. 보험사는 상단의 국가고객만족도(NSCI) 수상실적이 '연속 14년', '연속 11년'으로 다른 것을 보고 사기 사실을 간신히 적발했다. 왼쪽부터 정상영수증, 위조영수증. 삼성화재
원본보기 아이콘보험사도 '고액 보장' 등 경쟁적 상품 출시 지양해야
국민들이 보험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갖게된 데엔 보험사들의 책임도 크다. 경쟁적으로 보장금액을 올려 소비자를 현혹하거나 '떴다방식' 절판마케팅을 일삼는 것 등이 대표적 사례다.
김헌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성장과 통합' 금융분과 공동부위원장)는 "보험사 간 경쟁이 너무 과열되다보니 상품절제가 부족해졌고 보험사기에 대한 방어력도 약해졌다"면서 "보험사 스스로 보험사기에 취약한 상품을 출시하는 걸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보험사 최고경영자(CEO) 연봉이나 성과에 보험사기 리스크에 대한 관리능력을 반영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변혜원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상품을 개발할 때 소비자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며 "보험사에 대한 신뢰도가 낮을수록 우발적으로 사기를 저지르는 '연성 보험사기'의 자기 합리화가 쉬워진다는 점에서 보험사가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포상금제 확대도 보험사기 예방하는 좋은 대안
보험사기 조기예방을 위해 포상제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보험사기 포상제는 보험사기 혐의자를 신고한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금융감독원과 생명·손해보험협회가 공동으로 운영한다. 포상금은 최대 20억원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조직형 보험사기는 내부자 정보나 제보 없이는 잘 알 수 없는 범죄"라며 "낚시할 때 찌가 클수록 큰 고기가 물리는 것처럼 포상금을 더욱 확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태헌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포상금은 범죄조직의 운신 폭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면서 "보험사기를 저지르려면 범죄조직 외에 공모할 사람을 더 모집해야 하는데 포상금을 올리면 누군가 혹시 신고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커지고 이는 일종의 범죄 예방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시민들은 바쁜 생업에도 보험사와 금감원에 4452건의 보험사기를 제보했다. 이를 통해 521억원의 보험금을 지켰다. 제보자들에겐 총 15억2000만원의 포상금이 지급됐다. 우리사회를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힘은 거창한 제도나 기관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정의를 실현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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