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남해경찰서 중앙지구대 위주빈 순경
야구 꿈나무에서 든든한 민중의 지팡이로
지역 주민과 소통하는 바다 마을 지킴이
1월 초 경남 남해경찰서 중앙지구대에서 만난 위주빈 순경(24). 그는 2023년 입직해 지난해 1월부터 이곳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프로야구 선수를 꿈꿨던 그는 12살 육종암 진단을 받았다. 여러 차례의 험난한 항암 치료 과정을 거치고 2년 만에 야구팀에 복귀했으나 그의 앞에 펼쳐진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항암 치료로 체력이 떨어지고 프로팀 입단의 꿈은 좌절됐다.
그러나 위 순경은 투수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경찰관이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고 곧바로 공채 시험에 뛰어들었다. 위 순경은 “경찰 시험 준비를 하면 할수록 이 직업의 매력에 빠졌다”며 “야구를 할 때도 팀원들과 협업해 더 나은 방향을 찾는 것을 좋아했고, 서로 안 되는 게 있으면 ‘이런 방법도 있는데, 이렇게 해보면 어떻냐’라며 돕는 것을 좋아해 경찰이라는 직업이 잘 맞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워낙 큰 병을 치른 탓에 처음에는 주변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위 순경은 “처음 경찰의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 부모님께서 ‘몸이 안 좋아서 야구를 그만뒀는데, 굳이 몸 쓰는 직업을 해야겠냐’라며 부정적으로 보셨다”면서도 “그래도 입직하고 나니 걱정은 좀 하시지만, 좋아하신다”고 했다. 같은 팀 선배들은 위 순경에 대해 “모르는 게 있으면 계속 찾아보고 공부한다. 운동하고 와서 그런지 끈기가 남다르고 진중하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위 순경은 “여전히 업무 처리할 때 잔 실수가 많다”며 “그래도 좋은 분들이라서 제 실수를 이해해 주시고 넘겨주신다”고 웃어 보였다.
위 순경이 중앙경찰학교에 입학한 해에 ‘교육 대개혁’이 시행되면서 경찰학교 교육이 크게 바뀌었다. 특히 학생들이 직접 현장 출동 시나리오를 만들고 경찰 업무를 수행하는 수업에서 위 순경은 많은 것을 느꼈다. 그는 “직접 현장 시나리오를 만들고 대응해봤는데, 처음엔 실수가 엄청 잦았다”며 “좌절감도 느껴졌지만, 차라리 실제 현장에 나가기 전에 학교에서 실수하고 제대로 배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학급 반장도 자처하며 열심히 훈련하고 공부했지만 위 순경이 마주한 실제 현장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위 순경은 “교육은 법 절차와 행동 요령만 알려주지만 현장은 똑같은 상황이어도 상대하는 사람이 다르고 수만 가지 변수가 존재한다”며 “그렇다 보니 교육과 현실이 다르다는 점을 깨닫고 적잖이 당황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위 순경은 매뉴얼을 끼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원칙과 절차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한다. 경찰 내부망에 다른 경찰들이 올리는 현장 상황도 꼼꼼히 읽어보고 자신이 그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지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도 한다. 위 순경은 “사람이 많은 대도시보다 신고가 적다 보니 아무래도 현장 경험이 부족한 면도 있다”면서 “그래서 출동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매뉴얼을 숙지하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틈틈이 공부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현장 업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경남 남해군은 대형마트 하나 없는 조용한 시골 동네지만, 해수욕을 즐기러 오는 피서객이나 유명 사찰 보리암과 독일마을을 찾는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여름철이면 112신고가 급증한다. 평소 하루 3~4건의 신고가 접수되는 반면, 여름철엔 두 자릿수는 기본이다. 농업에 종사하는 고령 주민이 많은 만큼 농산물 절도나 빈집털이 같은 범죄도 자주 발생한다. 위 순경은 “수확철이 되면 바닥에 말려놓은 농산물을 가져가는 일들이 빈번하다”며 “또 농번기가 끝나면 마을 주민들끼리 다 같이 여행을 떠나는데, 이 시기를 노려 빈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는 빈집털이가 자주 발생한다”고 전했다.
위 순경이 근무하는 중앙지구대 한쪽 벽면엔 다른 지구대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명단이 붙어있다. 중앙지구대 관할인 남해읍과 서면, 이동면 3개 읍면 마을 이장 76명의 사진과 이름, 전화번호가 적힌 명단이다. 위 순경은 “이장님들의 전화번호를 모두 수집해 지역에 무슨 일이 생기면 이장님과 연락해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마을 어르신이 실종되거나 휴가철 여행객이 몰리는 경우 이장님들에게 연락해 마을에 안내 방송을 하게 하는 등 함께 범죄·사고 예방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마을 이장들과 협의체를 구성해 안전 치안 환경을 조성한 중앙지구대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0월 경찰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위 순경은 “농번기 후에 이장님들이 마을 주민 여행 시기를 알려주시면 날짜에 맞춰 평소보다 더 집중적으로 마을 순찰에 신경 쓴다”며 “마을 이장님들과 지구대 간 소통이 활발해 긴급한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1년여간 일을 하면서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주취자 관련 신고가 들어오면 위 순경은 “신고 내용을 보고 얼추 어떤 상황인지 상상해본다. 지구대에 자아와 감정을 빼놓은 채 출동한다”며 “그렇게 준비하면 감정 소모도 덜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고 전했다. 위 순경은 “주취자에게 단호하게 귀가를 권유했는데, 경찰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등 난리를 피워 상당히 당황스러웠다”며 처음 출동했던 날을 떠올렸다. 그는 “그럴 때 선배들이 어떻게 대응하시는지 유심히 관찰했다”면서 “주취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최대한 공감해주면 협조적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후 2시가 되자 위 순경은 선배 경찰과 함께 순찰에 나섰다. 이날 기자가 함께 방문한 마을은 남해읍 동산마을과 광포마을. 한번 순찰을 나가면 1시간40분에서 2시간가량 소요된다. 마을 입구에 순찰차를 세워두고 골목 사이사이를 걸어 다니며 마을을 살핀다. 찬 바람이 제법 부는 날씨에 거리에 나와 있는 주민은 없었지만 위 순경은 주변을 꼼꼼히 관찰했다. 마을 순찰뿐만 아니라 교통사고 방지 차원에서 도로 갓길에 서서 차량 통행을 지켜보기도 했다. 위 순경은 “경찰차나 경찰이 자주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다. 범죄에 취약한 고령 주민이 많기 때문에 마을 치안을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 순경은 경찰을 ‘카멜레온’에 비유했다. 그는 “카멜레온은 상황에 맞게 색깔이 변하는데, 경찰관도 접수되는 신고에 맞게 업무 처리를 해야 해서 그런 부분이 닮은 것 같다”면서 “경찰관의 업무가 참 다양한데, 아무리 매뉴얼을 숙지하고 있어도 워낙 다양한 신고가 들어오고 매번 낯설고 새로운 느낌”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위 순경은 경찰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흔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이는 경찰을 보고 환상을 가질 수 있는데, 그런 환상은 접어두고 들어와야 한다”며 “드라마처럼 시민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절차를 따라야 한다. 이 절차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하면 그에 따른 책임도 크다”고 조언했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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