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에너빌리티 소액주주들이 소송을 불사하며 주주명부를 확보, 지난주부터 주주 서한을 보내고 있다. 두산그룹이 추진하는 사업구조 개편안에 대한 부당성을 알리려는 행동이다. 지난 3일에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에 사업구조 개편 반대의사 표명과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촉구하는 입장문을 전달하기도 했다. 48만명의 주주 가운데 1%도 되지 않는 235명이 '십시일반' 비용을 모았다. 말 두(斗) 뫼 산(山). '한 말(부피를 재는 단위), 한 말 쉬지 않고 쌓아 올려 산을 이루자'는 두산 창업주 박승직의 창업 정신을 역설적이게도 소액주주들이 실천하고 있다.
두산의 사업구조 재편 2부가 진행 중이다. '고평가'를 받는 두산로보틱스 가 '캐시카우' 두산밥캣 을 흡수합병하려던 계획이 주주 이익 침해 논란을 빚으며 두산은 스스로 1부의 막을 내렸다. 하지만 2부만큼은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피날레로 가는 길은 첩첩산중이다.
2부는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보유한 투자사업 부문을 신설,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순으로 진행된다. 문제는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입장에서 두산밥캣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점에서 1부와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거다.
주주들이 무엇보다 원하는 것은 소통이다. 지난해 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97%를 낸 두산밥캣을 분할해 어떤 이득이 있는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그동안 담보로 제공한 두산밥캣 주식을 잃게 될 경우 차입 여력이 어떻게 변동하는지, 7000억원 차입과 관련된 자산이 얼마인지 알 수가 없다는 의문에도 충분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또 다른 핵심은 투자사업 부문의 분할 비율과 두산로보틱스와의 합병비율이다. 회사는 순자산가치 기준으로 분할 비율을 1대 0.247, 합병비율은 시가에 따라 1대 0.128로 정했다. 쉽게 말해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은 밥캣을 넘겨주는 대신 1주당 0.03주의 로보틱스 주식을 받는데, 밥캣을 포기하는 대가로는 불공정하다고 지적한다.
금융당국까지 이례적으로 분할 신설법인의 가치 평가 방식을 지적하며 수정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비율을 다시 산정하고 있는 두산이 주주의 마음을 되돌릴 묘안을 찾길 바란다.
두산은 클린에너지, 스마트머신, 첨단소재라는 3대 축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대전환의 시대에 차세대 성장동력에 집중하자는 경영진의 판단에 대부분 주주는 시비를 걸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탈원전으로 마음고생을 해온 주주들은 새로운 기대마저 품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기업가치와 주주가치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룹이 맞이한 절체절명의 순간 두산가(家)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점은 무척 아쉬운 부분이다. 두산에너빌리티 개인 최대 주주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나 동생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누구도 주주를 설득하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 모든 일에 오너가 나설 수야 없지만, 직접 설득하는 진정성을 보였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1896년 포목점으로 출발한 두산은 화장품, 맥주회사를 거쳐 중공업까지 혁신을 거듭하며 무려 128년을 생존했다. 종로 4가에 가면 두산그룹의 모태가 되는 '박승직상점'이 있던 자리에 두산 타임캡슐이 잠들어 있다. 창업 200주년을 맞는 2096년에 개봉 예정이다. 200년 넘는 장수기업이 되더라도 주주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오현길 산업IT부 차장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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