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의약분업 파업 벌여
의대정원 10% 감축 등 요구 관철
의료정책 뒤집은 의사 집단
4년 만에 의료 대란 다시 벌여

전문가들 의사 집단행동에도
공공의료기관 확충 등
의료 공급체계 정비해야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과 병원 이탈로 4년 만에 의료대란이 다시 벌어졌다.


전공의 사직서 제출 이틀째인 20일 오후 10시를 기준으로 주요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 중 71%인 8816명이 사직서를 냈다고 보건복지부가 21일 밝혔다.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전체의 63%인 7813명이다. 이에 따라 주요 종합병원의 수술과 외래진료가 축소되는 등 환자 진료가 줄줄이 미뤄지기 시작했다. 이날 18시 현재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무기한 수술 연기, 일방적 진료예약 취소 등의 피해사례 58건이 접수됐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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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가 진료 거부를 통해 의료체계를 중단시킨 것은 2000년 이후 4번째다. 의사 수급 등 의료정책을 놓고 한 나라의 의사들이 일제히 진료를 중단하는 집단행동을 몇년마다 반복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 외에는 없다.

의료계는 2000년에는 의약분업 도입을 반대하는 파업을 벌여 의대 정원 10% 감축과 진료수가 인상 등의 요구 사항을 관철했다. 정부가 예상하는 ‘2035년 의사 1만5000명 부족’ 상황의 시초가 이때 의료계가 파업으로 얻어낸 정원 감축이다. 이어 정부가 추진한 2014년 원격의료 도입, 2020년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도입 역시 각각 의료계의 집단 휴진과 전공의 총파업으로 좌절됐다. 의료계 단체행동 때마다 정부가 백기를 든 것은 의료공백 장기화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정부의 이런 ‘아킬레스건’을 잘 알고 있는 의사들은 이번에도 의료공백의 파급력을 이용해 집단 사직서 제출을 통해 단체행동에 나섰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부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는 "정부가 이번에도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밀려 뜻을 굽히면 앞으로 의료계가 반대하는 어떤 정책도 추진할 수 없게 된다"며 "(진료받는 환자에게) 일부 피해가 있어도 정부가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국민도 이를 수용하면 의료계는 앞으로 집단행동으로 이길 수 없다고 인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공의 집단 사직 등이 불법 행위로 이어지면 면허정지 및 박탈, 형사처벌 등을 원칙대로 집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빅5 병원의 전공의가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한 20일 서울 한 대형병원 외래 진료 대기공간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빅5 병원의 전공의가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한 20일 서울 한 대형병원 외래 진료 대기공간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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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향후 의료계가 집단행동을 다시 벌일 경우 국가 의료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정부가 의료공급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방의료원, 보건소 등 공공의료 확충이 대표적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재활의학과 전문의)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공공의료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며 "정부가 재정 부담을 이유로 이를 미루면 의료계가 집단행동을 벌일 때마다 휘둘리게 된다"고 말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도 "공공의료기관을 늘리지 않고는 의사단체의 집단행동을 예방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모든 민간의료기관이 국가건강보험 환자를 반드시 받도록 하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바탕으로, 사실상 공공의료 영역도 민간에 거의 모두 위탁했다. 이런 의료체계 때문에 국내 공공의료 비중은 경제협력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2021년 OECD 건강 통계’에 따르면, 의료기관 수 기준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비중은 5.2%로, 영국(100%), 캐나다(99.0%)는 물론, 미국(23.9%) 일본(22.8%)에도 못 미쳤다. 병상수 기준으로도 8.8%로 영국(100%), 프랑스(61.6%), 일본(27.6%), 미국(21.3%)에 미치지 못했다.


전공의에 의존하는 수련병원 진료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왔다. 정운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부산·경남지부 대표는 "병원이 수익 창출을 우선시해 전문의 중심 진료를 하지 않다 보니 전공의 집단행동이 반복되는 것"이라며 "정부가 종합병원의 진료 체계를 전문의 중심으로 바꾸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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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의료계와의 소통 채널을 실효성 있게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정부와 의료계는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지 않도록 상시 소통 채널을 더욱 적극 운영하고, 의료계도 국민과 상시 대화를 통해 주장하는 바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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