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감독·배우 합심한 '성난 사람들'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3관왕
이민자로서 느낀 고독, 연기의 자양분으로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미니시리즈 작품상, 남우주연상(스티븐 연), 여우주연상(앨리 웡) 등 3관왕에 오른 '성난 사람들'은 한국계 감독과 배우가 합심해 만든 블랙코미디 드라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가난한 남자 대니(스티븐 연), 남편과 소원해져 우울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부잣집 여자 에이미(앨리 웡)가 운전 중 서로 시비가 붙어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지난해 4월 넷플릭스에 공개돼 시청 시간 10위권에 5주 연속 이름을 올리는 등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흡입력 있게 풀어냈다는 호평도 받았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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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력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아온 이성진 감독의 경험이다. 극본을 쓰고 연출한 그는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마련한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2023'에서 "'성난 사람들'은 5~10년 전이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던 작품"이라며 "과거에는 어떻게 하면 미국인이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면,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극 중 대니처럼 어린 시절 미국의 한인 교회에 다녔다. 이날 수상 소감에서 "우리 쇼는 실제로 내게 일어난 교통사고에 기반하고 있어 그 운전자에게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다"며 웃었다. "선생님, 저는 앞으로 당신이 계속 소리를 지르며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길 바랍니다(웃음)."

생동감 넘치는 표현의 근원도 경험에서 발견된다.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난 스티븐 연은 다섯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대학 시절 심리학을 전공하다가 연기에 관심을 가져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무명 배우로 활동하다가 2010년 드라마 '워킹데드'에서 글렌을 연기해 스타덤에 올랐다. 오랜 시간 이민자로서 느낀 고독과 외로움은 연기의 자양분이 됐다. 그는 "여기서도 저를 안 받고, 저기서도 저를 안 받아 혼자만 남았을 때 처음에는 슬펐지만, 그걸 넘어가면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스티븐 연은 내재한 역량을 봉준호의 감독 '옥자(2017)',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 등에 출연해 연기로 발휘했다.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2021)'에선 한국계 미국인이란 정체성을 더해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승화시켰다. 그 덕에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수상에는 실패했으나 자기 정체성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작품에 녹여낼 줄 안다는 극찬을 받았다.

영화 '미나리' 그 남자, 이번엔 골든글로브 수상 원본보기 아이콘

'성난 사람들'에선 좀처럼 일이 풀리지 않아 좌절감을 품고 사는 대니의 지질한 면모를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정말 신기하다. 평소 내가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개 고독과 고립에 관한 것인데, 이곳에서 이런 순간을 맞으니 다른 모든 사람이 떠오른다. 마치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 같은 느낌"이라며 가족과 제작진에 감사를 전했다. '겨울왕국'은 스스로 고독과 고립을 택한 여왕 엘사가 동생 안나가 보여주는 진정한 사랑의 행동에 힘입어 변화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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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연과 이성진 감독에게 극적인 감정은 한 번 더 찾아올 수 있다. '성난 사람들'이 오는 15일 열리는 에미상에 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작가상 등 열한 부문 열세 개 후보로 지명돼 있다. 골든글로브 3관왕으로 수상 가능성은 크다고 평가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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