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헤르만 폰 카이저링의 '방랑하는 철학자'<1>
시의 본질은 자아가 아니다.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니다.
개성은 없다.
시인은 정체불명 아닌가.
항상, 뭐든 다른 것 속으로 뛰어 들어가 그것을 차지하려고 할 뿐.
왜 키츠는 시인이 이기주의자일 수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을까? 이기적이어야 제 할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철학자야말로 시인보다 고상한 의미에서 이기적이지 않을까? 철학자와 시인의 관계는 시인과 배우의 관계와 같다. 배우는 연기하지만 시인은 창조한다. 철학자는 내심 표현과 창작을 원한다. 특별한 형식에 얽매이지도 누구와 같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자기의 의식이 우주의 의식 속에 녹아들어야 한다. 각각의 현상을 높은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자기 철학부터 그런 식으로 주목해야 한다.
내 고향은 깊이 있게 성찰하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각했다. 우주는 특수한 에너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개별적이며 우연한 존재가 아닐까 싶었다. 이런 생각을 품으면서 나는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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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은 늙어서도 여행하며 살았으니 얼마나 현명했던가! 가능한 끝까지 굳지 않으려고 했다. 가능한 한 프로테우스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 변화무쌍한 기질처럼 생각이 유연해야 철학을 공부할 자격이 있다. 결국, 나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헤르만 폰 카이저링, <방랑하는 철학자>, 홍문우 옮김, 파람북, 3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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