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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펜스칼럼]軍 대민 지원에 전문성을 고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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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명목을 내세워 무리한 상황
장병들 대민지원에 투입해선 안돼

[디펜스칼럼]軍 대민 지원에 전문성을 고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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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군에서 군 생활을 했다. 부대 인근 마을 사람들은 농사로 생계를 유지했다.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일손이 부족해지는 계절에는 주말마다 장병들도 밭으로 들로 나갔다. 대민지원이었다. 풀도 뽑고, 농약도 뿌렸다. 불만은 없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고생한다며 건네준 막걸리 한 잔과 '사제 담배'에 피로가 금세 풀렸다. 하지만 주민들의 불만은 늘었다. “옆집은 대민지원을 해주면서, 왜 우리 집 농사일은 안 도와주냐” 며 지휘관에게 항의했다. 지휘관은 그때마다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관할 지방자치단체에서 협조공문을 보내면 군부대는 예규에 따라 회의를 거쳐 대민 지원을 결정한다. 군은 대규모 인력을 짧은 시간 안에 투입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병력을 지원해왔다. 폭설과 집중호우 등 자연재해뿐 아니라 조류인플루엔자(AI)와 같은 가축 질병, 코로나19 등 사회적 재난을 수습하기 위해 투입됐다. 지난해 대민지원 누적 장병 수만 100만명을 넘는다.

하지만 대민지원에 투입되는 장병들은 전문성이나 경력과 무관하게 배정된다. 경북 예천에서 수해 실종자 수색 중에 유명을 달리한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대표적이다. 수중 작전을 하지 않는 포병대대 장병이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안전로프도 없이 유속이 빠른 물을 수색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해병대는 지난해 태풍 ‘힌남노’로 침수피해를 본 경북 포항시에 수륙양용장갑차 등을 투입해 시민들을 구조했다. 당시 해병대의 활약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퍼지면서 많은 국민의 박수를 받았다. 이런 사례로 인해 지휘관들이 ‘작전’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무리한 상황에서 장병들을 계속 대민지원에 투입한다는 불만도 있다.


대민지원활동 업무 훈령은 ‘군 작전 임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지원’이라고 명시했다. 지금은 이 훈령마저 사라졌지만, 목숨을 잃으면 군작전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무리한 대민지원에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국방에 매년 57조의 예산을 쏟아붓는다. 세계 10위권이다. 하지만 '군대는 인생을 낭비하는 곳'으로 여기는 장병이 많다. 대민지원에 투입돼 목숨을 잃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는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주변국의 도발과 열강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군에 대한 이미지는 다르다. 이스라엘은 군대에 대한 자긍심이 높다. 사회에 진출할 때 출신 학교보다 출신 부대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명문대 입학보다 힘들다는 사이버첩보부대인 8200부대에서 군 복무를 하면 제대 후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까지 이어갈 수 있다. 부대원들의 특성에 맞게 부대도 배치한다. 이스라엘 북부에 거주하는 아랍유목민 베두인족은 사막 순찰과 땅굴 탐지를 하는 특수정찰부대로 보내진다. 전문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존중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군 조직이 되려면 적재적소에 장병을 배치해야 한다. 군작전과 무관한 대민지원에 부대원을 보낸 것을 지휘관들의 공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대민지원에 몇 명을 투입했다는 보도자료를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각 군의 홍보도 적절치 않다. 군이 병사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길 때 장병들은 소속된 군과 제복을 입은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 국민들도 그런 장병들을 기대하고 있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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