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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취지 무시는 위헌"…강제동원 해법, 법 어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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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동의 없으면 공탁도 무효
병존적 채무인수 통한 직접 변제는 가능

정부는 지난 6일 대법원에서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국내 재단들이 대신 판결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제3자 변제' 방식의 해법을 제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7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그동안 피해자 입장을 존중하면서 방안을 모색한 결과"라고 밝혔지만 정작 피해자 측과 시민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 해법이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무시했으며 위헌이기에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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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부의 이번 해법안이 위헌 또는 위법일까? 그렇게는 보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먼저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이후 사정을 돌아봐야 한다. 2018년 대법원 판결로 과거 강제징용을 당한 피해자 15명은 채권자, 미쓰비시중공업 및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들은 채무자가 됐다. 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살아있으며 일본 기업들은 이를 배상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돈을 갚지 않았고, 사법부 역시 외교적·정치적 이유로 한국에 있는 일본 기업을 상대로 강제집행을 하지 않았다. 일본은 대법원 판결을 이유로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을 막는 수출규제를 단행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처럼 한일 양국 간에 평행선을 걷고 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 해법을 찾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제3자인 정부가 일단 돈을 대신 갚아준다는 것이다. 방식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대법원이 인정한 채권자들의 배상청구권을 부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에 명백하게 반하는 행위라고 보기는 어려운 셈이다.


다만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이 대법원 판결의 핵심인데 왜 정부가 대신 변제하냐는 지적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특히 제3자 변제 이후 정부가 일본 기업들에 대한 구상권 행사를 상정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점이 정부의 이번 조치가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반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의 판결은 해당 민사 소송의 당사자에게만 해당될 뿐, 행정부의 정치적 행위와는 별개다"며 "물론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벗어나는 정책은 맞기에 위헌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내놓을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대신 갚지만 배상청구권 부정하진 않아…피해자들, 행정소송 제기 가능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 공식 발표를 앞두고 있는 6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 설치된 강제징용노동자상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 공식 발표를 앞두고 있는 6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 설치된 강제징용노동자상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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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문제는 없더라도 피해자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행정소송이다. 행정소송은 정부의 어떤 행위 때문에 손해가 생겼을 때 제기할 수 있다.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대법원에서 인정받았고, 그대로 권리를 행사하길 원했다. 하지만 정부의 제3자 변제로 그 권리가 소멸해버리면 피해자들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미쓰비시나 신일철주금으로부터 직접 돈을 받는 게 과연 법적인 이익에 해당하는지 등이 법적으로 쟁점이 될 수 있다.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와중에 정부가 제3자 변제 절차를 밟을까 우려된다면 피해자들은 가집행을 함께 신청하면 된다. 법원이 신청된 가집행을 받아들이면 정부는 제3자 변제 절차를 멈춰야 한다. 정부 입장에서는 강제징용 해법을 제시했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법원의 판단만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정부가 판결금 지급해도 채권자가 거부하면 효력 無

피해자들이 행정소송을 걸지 않고, 정부가 빠르게 절차를 밟아 피해자들에게 돈을 지급한다면 배상이 이뤄진 걸까? 여기서의 쟁점은 제3자 변제에서의 이해관계다. 제3자 변제에 관한 민법 제469조는 1항에서 '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다'고 제3자 변제를 폭넓게 허용하면서도, 2항에서 '이해관계 없는 제3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한다'고 제한을 뒀다.


즉 제3자가 채무관계에 대한 이해관계가 있다면 공탁 등 방식으로 변제가 가능하지만, 반대로 이해관계가 없다면 채무자의 의사에 반해 변제할 수 없다. 제3자인 정부가 피해자와 일본 기업 간 채무관계에서 어떠한 이해관계가 있는지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을 입금하더라도 채권자인 피해자들이 채무자인 일본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겠다고 주장한다면 채무 변제는 없던 일이 된다. 정부가 제3자 변제를 위해 공탁을 해도 피해자들이 거부하면 공탁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정부·일본기업 함께 채무 부담하는 '병존적 채무인수' 택할 수도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방안이 발표된 6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피해당사자 양금덕 할머니가 정부안을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방안이 발표된 6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피해당사자 양금덕 할머니가 정부안을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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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정부가 일본기업의 채무를 병존적으로 인수해 변제하는 방법은 있다. 현직 법관인 A 부장판사는 "현재 정부에서는 사태 해결을 위해 일본 가해기업들에게 판결상 채무를 인수하는 계약을 넣으려는 것 같다"며 "지금 단계에서 공탁이 힘들지만, 가해기업이 정부에서 설립한 재단의 채무인수에 동의해주면 공탁이 가능하다. 공탁하면 피해자들이 더이상 강제집행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채무인수에는 원래의 채무자는 면책시키고 채무인수자만 채무를 부담하게 되는 면책적 채무인수(민법 제454조)와 채무자와 인수자 사이의 계약으로 채무자와 인수자가 중복해서 함께 채무를 부담하기로 하는 병존적 채무인수가 있다. 면책적 채무인수는 채권자가 승낙해야 효력이 생기지만, 채권자에게 불리할 게 없는 병존적 채무인수는 채권자의 동의가 없어도 성립한다.


A 부장판사는 "제3자 변제를 하기 전에 가해기업의 동의를 얻어서 채무를 병존적으로 인수하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정부가 제3자로서가 아니라 직접 채무자로 변제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다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명분도 없고, 법적으로도 불안정한 해법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혼돈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정 교수는 "애초에 피해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커다란 결함이 있다"면서 "다음 정권에서 이번 해법을 무효화할 수 있기 때문에 긴 시간 동안 갈등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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