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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수술대 올랐던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6+3’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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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개선안 도출 어려워 3~5년간 현행 유지 무게
대안별 편의성·시의성 종합적 고려한 정책적 판단 필요

시행 4년여 만에 기업의 감사비용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수술대에 올랐던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변동 없이 현행대로 유지된다. 현재 상황에서 어떤 대안이 적절한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 더구나 제도가 시행된 지 한 주기(사이클)가 끝나기도 전이라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도 심하다. 대폭 완화할 경우 제도의 도입 취지 역시 무너질 수 있다. 이 같은 이유로 금융당국이 최종안을 섣불리 내놓지 못할 가능성이 커서 앞으로 3~5년간은 현행 제도 유지에 무게가 실린다.


대우조선 분식사태 이후 2019년 본격 시행

3일 금융당국과 회계 업계 등에 따르면 금융당국의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완화 추진은 사실상 스톱(정지)된 상태와 다름없다. 금융당국에 정통한 업계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몇 년간, 적어도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의 한 사이클이 도래하기 전까지 변화 없이 기존 제도가 유지될 것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면서 "현재 상태에서는 어떤 결론을 내기가 힘든 상황임을 이해관계자 모두 인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9년 본격 시행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6년 연속 자율적으로 감사인을 선임하면 다음 3년은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가 계기가 됐다. 2018년 11월 시행된 개정 외부감사법(신외감법)에 따라 도입했다. 이 제도 도입 이후 회계 투명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도 있지만, 감사 시간과 비용이 크게 늘었다는 기업들의 불만이 꾸준히 제기됐다. 감사인의 과도한 자료 요구 등도 증가했다는 토로도 이어졌다.


이에 금융위는 한국회계학회에 연구용역을 의뢰했고, 지난달 10일 '회계 개혁 제도 평가 및 개선 방안' 심포지엄에서 그 결과가 공개됐다. 여기서 나온 대안은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의 자유 선임 기간을 현행 6년에서 9년으로 확대하거나, 지정 기간을 현행 3년에서 2년으로 축소하는 안이었다. 금융위는 이를 바탕으로 상반기 내 제도 개선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금융위는 "9+3(9년간 자유 선임을 한 후 3년 지정 감사) 또는 6+2(6년간 자유 선임을 한 뒤 2년간 지정 감사)의 완화안이나 현행(6+3) 유지에 대해 어느 것도 결정된 바 없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금융위의 목표대로 최종안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한국회계학회가 2월10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회계개혁제도 평가 및 개선방안' 심포지엄을 열고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개선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정윤 기자

한국회계학회가 2월10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회계개혁제도 평가 및 개선방안' 심포지엄을 열고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개선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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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연구용역 결과가 미흡해서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도입된 후 아직 한 주기도 돌지 않았다. 4년여 만에 제도를 바꾼다는 것은 사실상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 이후 '감사 독립성 강화'를 위해 어렵게 도입한 제도이니만큼 현행 제도를 그대로 운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연구용역을 주도한 연구팀 역시 "현시점의 분석으로는 어느 대안이 가장 적절한지 판단하기 어려웠다"면서 "제도가 충분히 시행된 시점인 3~5년 후에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을 할 필요가 있고, 대안별 편의성·시의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4년여 만의 변경에 거부감 크고 용역결과도 미흡해

한 회계법인의 고위 관계자는 "현행 제도를 손질하려면 좀 더 많은 연구자료가 필요한데, 심포지엄 이후 새로 들어간 연구용역이 없는 상황"이라면서 "한 주기는 돌아야 데이터가 쌓이고 이해관계자 간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근거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재형 한국공인회계사회 기획조정팀장 역시 "한 사이클이 지나고 나서 효과를 검증하고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게 맞는데, 현재 시점에서 그걸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개선이 아니라 변경에 불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문호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도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의 유지와 변경 중 어떤 것이 좋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금융위는 심포지엄 이후 어떤 안이 나을지 의견 전달을 하지도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6+3, 9+3, 6+2 등 각각의 안이 가지는 장단점은 있지만, 제도를 시행해보고 난 뒤라는 말에는 정책적 판단이 가미돼야 한다"면서 "어느 방향이 더 좋다고 하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현재 상태의 데이터로는 충분치 않아 한 사이클이 돌아야 하므로 더 시행해야 한다고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재계도 반발하고 있다. 재계는 지정 기간을 현행 3년에서 2년으로 축소하는 안에 반대 입장이다. 오히려 잦은 변경이 피로감을 더할 것으로 판단해서다. 더욱이 감사 계약은 3년 주기로 행해진다. 이에 재계는 폐지로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면, 자유 선임 기간을 현행 6년에서 9년으로 확대해달라고 요구한다. 재계 관계자는 "극약 처방으로 이 같은 제도가 공격적으로 도입됐는데, 이후 감사 비효율성이 심각하다는 현장의 목소리에도 지정 기간을 1년 단축하는 것은 오히려 기업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제도의 골격이 유지돼야 한다면, 비효율성은 조금이라도 개선해야 한다"면서 "사실 현재로서는 9+3으로 바뀌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자유 선임 기간을 9년으로 확대하는 것은 법 개정이 필요하며, 지정 기간을 2년으로 축소하는 것은 시행령으로도 가능하다. 금융투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총선 전에는 법 개정을 하지 못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9년으로 자유 선임 기간을 늘리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 "특히 금융당국 입장에서도 자유 선임 기간을 9년으로 늘렸다가는 어떤 악재가 발생할지 모르니 부담감이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당국은 현재로서는 개선안 결론을 내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회계학계의 목소리를 외면하기 어렵다. 이들은 한 주기를 돈 후에 심층 분석해서 최종안을 내야 한다고 본다. 심지어 재계는 한 주기를 도는 것을 떠나, 제도 자체의 폐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8일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폐지해 달라고 금융위에 의견서를 전달했다. 회계 업계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어떤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아 완화 여부는 사실상 중지 상태로 보는 게 맞다"고 전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완화를 위한 개정 준비 관련 움직임조차 없다"라고 말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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