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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요일日문화]일본이 유독 자판기 천국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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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문화·비대면 서비스 선호해 여전히 인기
음료수·아이스크림·라멘 등 제품군도 다양

편집자주몸도 마음도 나른한 일요일. 국제부 기자가 일본 문화와 관련한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전해드립니다

[아시아경제 전진영 기자] 일본은 '자동판매기(자판기) 천국'으로 불립니다. 길거리 어디서나 자판기를 쉽게 볼 수 있죠. 종류도 다양해서 음료수 뿐만 아니라 담배, 아이스크림, 라멘 등 웬만한 제품은 다 자판기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음료나 물건은 자판기보다 편의점 같은 가게에서 산다는 분위기가 더 강한데요. 왜 일본은 이렇게 자판기가 많은 것인지 자국에서도 궁금한 사람들이 종종 등장하는 듯 합니다. 일본의 한 대학생이 경영학과 레포트로 '일본이 자판기가 많은 이유'를 분석한 것도 있었는데요. 오늘은 일본의 '자판기 문화'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현재 일본 코카콜라 자판기.(사진출처=코카콜라 공식 사이트)

현재 일본 코카콜라 자판기.(사진출처=코카콜라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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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언제부터 일본에는 자판기가 들어오게 됐을까요?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960년대라고 합니다. 일본에 들어온 청량음료 자판기 1호는 바로 코카콜라 자판기였다고 하네요. 당시 880대가 전국에 설치됐다고 합니다. 동전을 넣으면 병에 담긴 콜라가 나와서 자판기 앞에 병따개도 같이 배치했었다고 하네요.


지금과 같은 캔 음료 자판기는 1970년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일본에서 식품과 음료를 파는 기업 '포카 삿포로'의 창업자 타니다 도시카게가 고안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커피 한 잔을 하려고 휴게소에 들렀는데 줄을 서서 기다리느라 30분 넘는 시간을 지체하고 말았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차 안에서 마실 커피가 있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에 여름에는 차가운 캔커피, 겨울에는 따뜻하게 데운 커피를 둘 다 팔 수 있는 자판기를 개발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전자부품 업체와 4년간 협의를 거듭한 결과 1973년 냉온 음료 판매가 가능한 자판기가 등장하게 됩니다.

1970년대 캔커피 등 각종 캔음료 출시와 맞물려 자판기는 일본에 단숨에 확산됩니다. 당시 자판기 사업이 너무 잘 돼서 업계에서는 "자판기 한 대를 두는 것은 가게 하나를 여는 것과 같다"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고 합니다. 여기에 당시 동전이 대량 유통되면서 동전으로 구매하기 좋은 자판기 인기가 올라가게 됩니다.


이후로도 왜 일본에서는 이런 추세가 유지되는 것일까?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는데요, 공통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간장 자판기.

일본의 간장 자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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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치안입니다. 자판기를 도로 옆이나 공원에 설치해도 누가 이를 부수고 훔쳐가거나 하는 일이 드물다는 것이죠. 치안이 보장됐기 때문에 주인 없이도 상품을 팔 수 있는 자판기가 자연스레 늘었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까닭에 자판기 산업 구조도 체계적으로 이뤄졌다는 평가가 많은데요. 자판기가 워낙 많기 때문에 관리 회사들도 유지보수, 상품 보충, 재활용 휴지통 관리까지 맡는 전문 회사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현금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여전히 현금이 카드보다 자주 사용되는 곳이죠. 동전도 1엔, 5엔 등 다양한 종류로 있다보니 처치가 곤란할 때도 많습니다. 이럴때 자판기 음료는 동전을 처리하기 아주 편리한 대상입니다. 일본이 지금처럼 고물가가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에는 동전 하나로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살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인기가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흥미로운 분석도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비대면 서비스를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요. 직접 가게에서 종업원과 얼굴 보고 주문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높이 사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명란젓 자판기.

일본의 명란젓 자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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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조금 슬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바로 직장인들 때문인데요. 일본도 주 40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하지만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이 자판기 이용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수요를 노려 최근 일본 자판기에서는 '푸드계 음료'라고 해서 밥을 챙겨먹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주로 직장인)을 위한 콘 스프, 카레, 된장국 등을 캔 음료로 만들어 따뜻하게 판매하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삼계탕, 찌개 등 한식 음료 등장했습니다. 저는 마셔본 적이 없지만 일본 직장인 지인들은 인증샷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을 보아 나름 유행을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이유로 지금도 자판기 열풍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판기 업체 협회인 일본 자동판매시스템기계공업회에 따르면 자판기는 2020년 12월 기준 일본에 404만대가 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이 음료 자판기입니다. 대수는 미국의 4분의 3이지만 땅 덩어리가 미국보다 일본이 작은 것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지 감이 오실 겁니다. 자판기에서 나오는 연간 매출만해도 약 5조엔(48조원)인데, 이 매출은 미국보다 1조엔 높은 수치라고 합니다. 업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이제 일본에는 자판기를 새로 설치할 장소가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포화상태에 다다랐다고 하네요.


이토엔에서 출시한 찌개맛 캔 음료.(사진출처=이토엔 홈페이지)

이토엔에서 출시한 찌개맛 캔 음료.(사진출처=이토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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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담배, 아이스크림, 라멘, 고기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자판기들이 출시돼 소비자들에게 재미를 주는 것도 한 몫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출장에서 명란젓 자판기와 간장 자판기를 발견해 또 다시 '자판기 나라'를 실감하고 돌아왔습니다. 일본에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독특한 자판기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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