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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칼럼]변호사의 일=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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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 변호사로 일을 하다 보면, 세상의 거의 모든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아무리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나의 의뢰인이라면 최대한 그의 입장을 생각해봐야 한다. 설령 그가 범죄자라 할지라도 검사가 들어주지 않는 부분들을 듣고 판사에게 알려야 한다. 최소한 그가 부당한 처벌이 아니라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변호사는 가장 먼저 그의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보면, 변호사의 일이란 요즘 시대를 뒤덮고 있는 소통 방식과 배치되는 면이 있다. 요즘 시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악의적 몰이해’의 시대다. 타인에게 선한 의도가 있다고 믿거나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는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그보다는 일단 상대를 비난하거나 의심하며 저격하는 것이 우리 시대 가장 폭넓게 퍼져 있는 현상이다.

인터넷 뉴스의 댓글은 조롱과 매도, 낙인 찍기로 가득 차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자신이 아닌 다른 편, 자기와 다른 집단에 속하는 타자에 대한 비난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극혐’(극도로 혐오)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정치적으로나 신념적으로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악마이다. 유튜브는 각종 저격 영상과 그 누군가를 무리 지어 공격하는 현상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변호사 일을 하려면 온갖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유사한 범죄 사건을 두고도 피고인의 입장에 설 때가 있고 고소인의 입장에 설 때도 있다. 마찬가지로 유사한 청구 사건을 두고도 원고 입장에 설 때가 있고 피고 입장에 설 때도 있다. 그중에서 설령 심정적으로 더 동조하는 쪽이 있다고 하더라도 변호사는 내 의뢰인의 입장을 더 철저하게 이해하고 설득해야 한다.


나는 변호사의 ‘정의’란 이 편과 저 편 중 누가 더 옳은지를 섣불리 단정 내리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변호사의 정의란 누가 되었든 그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언뜻 봐서는 세상으로부터 이해받기 어려운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을 먼저 이해하고, 세상과 판사에게 마지막까지 이해시키고자 애쓰는 게 변호사의 역할일 것이다. 변호사는 단죄나 판결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도 ‘이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할지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며 비난부터 하기 바쁜 시대, 서로를 이해할 의지나 의욕이 없는 시대, 그보다는 오로지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기 바쁜 시대, 가장 필요한 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 그 사람의 입장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싶다.


요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천원짜리 변호사’ 등 변호사가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유행하고 있다. 작품 속 변호사들은 모두 이해나 공감 능력이 뛰어나서, 타인의 입장에 고도로 몰두하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걱정하고 도와주는 희생정신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 현실의 변호사들이 모두 그렇진 않겠지만, 변호사 일에 그런 노력이나 마음 자체가 필요한 건 사실인 것 같다.


나의 일이나 삶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도 그런 마음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좋은 변호사가 되는 일은 곧 좋은 사회의 시민이 되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그 일의 핵심에는 타인의 일을 ‘이해’하는 마음이 있다. 설령 그 누군가를 비판할 때조차, 먼저 그 사람을 이해한 뒤 그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해와 비판은 모순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더 나은 비판, 모두가 더 좋은 사회와 삶을 만들어가기 위한 건전한 비판은 이해를 전제로만 가능할 것이다.


정지우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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