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전 우리는 일제로부터 광복했다.광복 후 한반도에서 일제는 물러났지만 또 다른 혼란이 시작됐다. 과연 완전한 광복이었을까?
코시로 유키코(小代有希子) 일본대학(日本大?) 교수는 일제의 종전전략에 대해연구했다. 그의 연구결과는 ‘제국의 쇠퇴:1945년 8월 이전 대륙 아시아에 관한 일본의 전략적 사고 Imperial Eclipse: Japan’s Strategic Thinking about Continental Asiabefore August 1945’에 담겨있다. 일본의 종전 지정학이라고 할 만하다. 바로 여기에 한반도의 운명이 깊이 관련됐다.
일본은 당시 국제 정세를 분석해 미소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읽고 거기에서 전후 일본이 소생할 기회를 봤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련이 동아시아에 진입하여 미국의 단독 승리로 확정되지 않는 시점을 노려 일본이 전쟁을 끝내야한다고 판단했다.
일본의 항복 전략은 동아시아에서 미소가 서로 경쟁하는 구도를 만드는 것이었다.종전 전략 수립을 담당한 해군 소장 다카기 소키치(高木?吉)는1945년 3월 종전 전략에 관한 중간보고서에서미국의 아시아 단독 지배에 반대하는 소련을 미국 혼자서 대응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만이 일본의 역할을 미국이 인정할 것이고, 이 길만이 일본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다시 아시아에서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이라고 분석했다. 참모본부 전쟁지도반장으로 대소 종전공작을 담당한 타네무라 사코(種村佐孝) 대령도 소련이 만주와 한반도에 공격을 개시한 후 항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지휘부인 대본영은 1945년 5월께 이미 소련이 곧 참전해 만주는 물론 한반도까지 진격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일본의 전략은 소련이 한반도에 진입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고 미국의 한반도 진입은 저지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소련에게 한반도 진입 기회를 제공하고 결과적으로 미소가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일본은1945년 초 한반도 병력배치를 조정해 한반도 남쪽을 미국으로부터방어하는 데 집중했다.
일본군은 소련군이 1리 전진하면 2리퇴각하라고 명령했다. 1945년 8월8일 참전을 선언한 소련은 아무 저항을 받지 않고 8월9일 함경북도 웅기에 상륙했으며 8월13일에는청진으로 진격했다. 소련 단독으로 한반도 전체를 점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놀란 미국은 한반도를 38선을 기준으로 분할해 미소가 점령하는안을 만들었다. 8월 13일 트루먼이 이 안을 승인하고 다음 날 스탈린도 미국 측 제안에 동의해 한반도는 분할된다. 일본이 복선을 깔고 소련과 미국이 지정학적으로 타협한 결과이다.
소련군의 침공이 시작된 후에야 일본은 항복한다. 수상을 역임한 고노에후미마로(近?文?)는 소련의참전은 신이 준 선물로 이제 전쟁을 마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본이 항복을 지연해서 비록 원자폭탄이투하됐지만, 미국의 단독 지배를 벗어난 지정학적 구도가 형성됐다. 미국이패전국 일본을 가혹하게 지배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일본은 미소의 세력 다툼을 교묘하게 이용해미국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발생한 한국전쟁으로 경제 회복에도 큰 덕을 봤다.
일본은 전쟁에서는 패했지만 동아시아에 미소간의 팽팽한 세력균형 구도를 만들어 생존의 발판을 만들었다. 그 결과 한반도는 불완전한 광복을 맞게 된 것이다. 진정한 광복을위해 한반도에 유리한 세력균형 구도를 만드는 것은 한반도의 몫이다. 지정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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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기 '지정학의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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