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요양병원에서 조리사로 일하는 60대 여성이 한 통의 메일을 보내왔다. 병원 내에서 감염 경로를 알 길 없는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는데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어 억울하다는 호소문이었다.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국무총리가 주재하다 보니 총리실 출입기자에게 제보하면 형편이 조금 나아질까 싶었던 것 같다. 여성은 요양병원이 감염 취약시설이라서 일주일에 두 번씩 선제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것도 가뜩이나 힘든 마당에 확진 직원을 홀대한다고 푸념했다.

고용노동부 익명신고센터에 신고하라고 답신을 보냈더니 고령의 나이에 겨우 얻은 직장을 잃을 것이 두려워 할 수 없다고 했다. 여성의 불만은 격리 기간을 강제 연차 처리한다는 병원 측의 통보에서 시작됐다. 조리사는 주말을 포함해 사나흘을 연달아 일하고 하루를 쉬는 등 근무 일정이 매달 바뀌는 특수 직업이라서 쉬는 날이 정말 중요하다. 병원이 조금만 배려했다면 유급휴가 처리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정부도 코로나19 확진자에 유급휴가를 적극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강압할 수는 없어 빈번하게 발생하는 갈등이다. 이 여성은 증상이 없는데도 울며 겨자먹기로 연차를 소진하던 사흘째, 정부 측에서 점검을 나오니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격리 기간 중 지침을 어기고 다시 출근한 셈이다. 비단 이 요양병원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감염병예방법 제41조2는 근로자가 코로나19로 입원 또는 격리되는 경우 사업주는 유급휴가를 줄 수 있고, 국가로부터 비용을 지원받은 경우 유급휴가를 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초창기부터 지금까지도 연차 강제 소진 논란은 뜨겁다.


윤석열 정부는 전 정권의 방역을 ‘정치 방역’이라고 평가절하하면서 데이터와 전문가에 의존한 ‘과학 방역’을 자처했지만 실체가 모호하다는 평이 대세다. 대표적인 감염 취약시설인 요양병원은 과학 방역 속에 완벽히 뚫렸다.


중대본에 따르면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감염자 수는 7월 4주~8월 3주 한 달 사이 165명에서 426명으로 71.8% 급증했다. 그래서 정부가 중대본 회의에서 전문가와 머리를 맞대 내놓은 방안이 추석 연휴 기간 대면 접촉 면회를 막는 거다. ‘정치 방역’ 때와 똑같은 대책이다. 환자 발생 단계별 현장 모의훈련도 실시하겠다고 했다. 요양병원 방역망은 무너졌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말이 나온 김에 코로나19 항체 양성률 조사는 많이 늦었고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25일 기준 우리나라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2270만1921명이다.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이미 앓았는데 혈세를 투입한 항체 검사 데이터가 어떻게 과학적으로 방역에 쓰일지 기대를 해본다. 항체가 생겼다고 해서 계속 보유하는 것이 아니고 보유량 자체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지적도 일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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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체 양성률 조사는 자연 감염자와 미진단 감염자 규모의 궁금증 해소용으로는 적당하나 감염 예방이 목적인 방역 대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윤 정부 들어 달라진 코로나19 방역 정책은 사회적 거리두기 폐지뿐이다.중대본 기사를 쓰면 ‘과학 방역이 아니라 과학 방치’라는 조롱성 댓글이 꼭 달린다. 정부가 보여주기식 방역 대책이 아닌, 사각지대에서 이중삼중으로 고통받는 국민 관리에도 세심하게 신경 썼으면 한다.


세종=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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