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 되풀이되는 시행착오에서 빠져나오는 도구, '인류학'
경제모형·빅데이터…현대인의 ‘알고있다는 착각’
첨단 도구 맹신했다 찾아온 위기
문화, 맥락으로 접근하는 인류학으로 해결
[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전문가와 시스템이 문제가 된 2008년 금융위기부터 코로나19처럼 국경을 초월하는 전염병까지 국가와 사회, 기업을 흔드는 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각종 경제 모형과 당대의 최신 과학·의학 기술로 정확히 진단하고 대응할 수 있다고 맹신했다.
그럼에도 매번 시행착오는 되풀이되고 있다. <알고 있다는 착각>의 저자 질리언 테트는 우리의 시선이 틀렸다고 지적한다. 경제모형, 빅데이터와 같은 기존 도구는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문화와 맥락을 알려주는 도구, ‘인류학’을 함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의 편집국장을 맡고 있는 질리언 테트는 케임브리지대에서 사회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딱딱한 경제 모형 같은 20세기 도구만으로 21세기를 탐색하는 것은 한밤중에 나침반의 눈금만 읽으며 어두운 숲을 지나가는 격"이라면서 ‘인류학 시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금융사, 글로벌 기업, 언론까지…인류학 시선 절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들며 인류학 시야의 효용을 설명한다.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대표적이다. 금융인들이 ‘혁신적 금융 상품’, ‘파괴적 금융 공학’과 같은 용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리스크를 간과한 것이 걷잡을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금융인들은 금융증권화 같은 ‘혁신’이 비금융인에게도 유익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누가 돈을 빌리고 이 개념이 실생활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들여다보지 않았다"라며 "금융이 통제 불능상태가 된 주된 이유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덮으려 하거나 비열한 계략으로 은폐하려 해서가 아니라 뻔히 보이는 곳에 감춰진 문제였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 사태를 금융 엘리트의 눈이 아닌 인류학이라는 렌즈로 바라봤다면 간과했던 위험과 내부 모순을 사전에 감지하고 대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애완동물과 소비자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해 사료 업계에서 반전을 일으킨 소비재 기업 ‘마스’, 에볼라부터 코로나19까지 국경을 넘는 전염병 사례를 통해 빅데이터나 통계만으로 놓치기 쉬운 복잡다단한 문제를 인류학의 시선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비춘다.
저자가 속한 언론 역시 인류학 시야가 부족하다고 꼬집는다. 2016년 9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의 토론에서 ‘크게(bigly)’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 파이낸셜타임스 편집국은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저자는 이 웃음이 언론 역시 엘리트주의에 물들어 시선이 편협하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자성한다. 질리언 테트는 “나 같은 사람들은 트럼프가 논리적으로 문장을 구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웃었지만, 누군가는 트럼프가 엘리트가 아니라는 신호로 알아듣고 환호했다”고 설명했다.
“‘더러운 렌즈’의 필요성과 한계 알아야”
저자가 강조하는 인류학의 시선은 ‘낡고 더러운 렌즈’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이 뻔하고 당연한 시선이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실천은 다소 어려울 순 있어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각자의 삶이 지나치게 익숙한 모든 이들이 저자의 짧은 조언을 받아들이면 어떨까.
“첫째, 우리의 렌즈가 더럽다는 점을 인정한다. 둘째, 우리의 편향을 인식한다. 셋째, 세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보려고 노력해서 편향을 상쇄하려고 시도한다. 마지막으로 앞의 세 단계를 거쳐도 렌즈가 완벽하게 깨끗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명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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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는 착각 | 질리언 테트 | 문희경 옮김 | 어크로스 | 344쪽 | 1만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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