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놔두면 상할까봐"… 법정까지 서게 된 사연

출국 전 오배송된 김치택배… 냉장고 넣었다 형사 재판까지 [서초동 법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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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대현 기자] 지난해 7월1일 저녁. 서울 강남구의 한 오피스텔에 거주 중인 A씨(49·여)가 집 앞에 놓인 택배 박스를 발견했다. 김치 600g과 마스크팩 6개가 들어 있었다. 앞서 그 집에 살았던 B씨(24·여) 앞으로 온 택배였다. B씨의 어머니가 주소지를 착각한 탓이었다.


B씨는 A씨의 집으로 택배가 갈 것이란 점을 알고 있었다. 당일 오전 택배기사가 "A씨 집 주소로 아이스박스 택배 배달 의뢰가 있다. 현 주소지를 보내주면 다음 날 도착할 것이다"라고 문자를 보냈고, B씨는 "A씨 집 앞에 놔두면 가지러 가겠다"고 답장한 상황이었다. 택배기사는 오전 11시55분쯤 '배송 완료' 문자를 보냈다.

이를 모르던 A씨는 난감했다. 그는 다음날 해외로 출국할 예정이었다. 택배 송장의 '받는 사람'란에 기재된 B씨의 이름과 전화번호도 일부가 '별표'(*)로 처리돼 연락이 안됐다. A씨는 그릇들에 김치를 소분해 냉장고에 넣어뒀다.

피해자 측 찾아왔지만 일부만 돌려줘

B씨는 저녁 7시가 넘어 A씨의 집에 도착했고, 초인종을 눌러 택배에 관해 물었다. A씨는 "상할까봐 냉장고에 넣어뒀다"며 김치통 하나를 줬다.


B씨는 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통화하던 중 김치 일부와 마스크팩을 받지 못했단 점을 깨달았다. B씨가 다시 찾아가 항의했고, A씨는 마스크팩은 돌려주면서도 김치를 전부 돌려주진 않았다.

B씨의 신고로 A씨는 수사를 받게 됐다. A씨는 수사기관에 "개인 업무 중이라 (처음부터) 마스크팩을 주는 것을 잊었다. 일부 김치는 남의 그릇에 담겨 있어 (바로) 돌려주지 못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또한 "당일은 택배 주인이 올 것 같지 않아 출국 전 음식물이 부패하지 않게 포장을 열어 냉장고에 넣어 뒀다. 한국에 돌아가 자가격리를 마치고 2차 백신 접종을 마치는 대로 조서를 받으러 가겠다"고 했다.

法 "의심 들지만, A씨 주장도 개연성 없지 않아… 무죄"

하지만 검찰은 점유이탈물횡령 혐의를 적용해 A씨를 재판에 넘겼다. A씨가 택배를 돌려줄 생각 없이 본인이 가지려고 했다는 판단에서다. A씨가 택배가 잘못 배달된 것을 알면서도 포장을 뜯었고, 택배기사에게 연락하지도 않았으며, 집에 찾아온 B씨에게 내용물을 일부만 돌려준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4단독 신혁재 부장판사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신 부장판사는 "A씨가 택배 우편물을 가질 생각으로 포장을 열어 가져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긴 한다"면서도 "A씨의 주장이 개연성이나 합리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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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부장판사는 "B씨가 직접 찾아오기 전까진 연락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택배기사도 배송 관련 연락을 준 적이 없었다"며 A씨는 다음날 해외로 출국하기로 비행기 편을 예약한 상태여서 자신의 냉장고에 든 음식물도 장기간 부재로 인한 부패를 막기 위해 폐기해야 할 형편이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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