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메신저·SNS 계정으로 접근, 친분쌓고 돈 요구
로맨스스캠 피해자 5명, 피해액 총 2580여만원
1심 "노인이고 자백·반성"… 징역 10개월 실형

"중동 파견 의사" '로맨스스캠' 그놈 정체… 66세 노인 [서초동 법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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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라크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2021년 1월경)
"이라크에 딸 이름으로 고아원을 설립했는데 도와주세요."(2021년 5월11일)
"전쟁이 났는데 전역하려면 장군에게 돈을 줘야 합니다. 한국에 가면 돌려줄테니 돈을 보내 주세요."(2021년 5월26일)

의사 'K'씨. 이라크에 파견돼 근무 중인 남성. 그는 지난해 1월 카카오톡 메신저로 A씨에게 먼저 접근해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연락이 계속됐고, 그는 수시로 호감을 표현했다. 같은 해 5월. 이라크의 한 보육원에 지원할 돈과 전역을 위해 필요한 돈을 보내달라고 그가 부탁했다. A씨는 2차례에 걸쳐 합계 450만원을 보내줬다.


모두 거짓이었다. K씨는 사실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의사가 아닌 간병인으로 일하던 이모씨(66·남)였다. 동시에 이른바 '로맨스스캠' 범행 조직의 송금책이었다. 로맨스스캠은 해외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해킹하거나 허위 계정을 만들어 국내 거주 피해자들에게 무작위로 연락하고, 친구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로 발전시켜 신뢰를 얻은 뒤 돈을 뜯어내는 범행을 말한다.

이씨는 이란에 파견된 군의관, 예멘에서 근무하는 의사, 미국에 있는 군인 등 수시로 신분을 바꿔 A씨를 비롯한 피해자 5명에게서 총 2580여만원을 편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건당 20~30만원을 수당으로 챙기고, 나머지는 가상화폐로 바꿔 조직의 총책에게 송금했다.


검찰은 이씨를 사기 및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씨는 지난해 1월 "해외에 약 80억달러(한화 8조7000억원)가 있다. 국내로 들여오려면 수수료가 필요한데 돈을 빌려주면 필요한 만큼 돌려주겠다"고 속여 208만원을 편취한 혐의, 자신의 명의로 된 체크카드와 그 비밀번호를 필리핀의 타인에게 해외 택배로 넘긴 혐의 등으로도 함께 기소됐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0단독 변민선 부장판사는 이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기 피해액이 많다고 할 수 없고, 피고인이 각 범행으로 얻은 이익도 커 보이지 않는다"며 "만 66세의 노인인 점,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엄벌의 필요성이 있다고 해도 피고인의 행위책임 및 그 결과책임에 비례해 형을 정해야 하는 점을 참작했다"고도 재판부는 덧붙였다. 어떤 결과가 발생했느냐가 아닌 어떤 행위를 했느냐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다. A씨 등 피해자들의 배상명령 신청도 모두 각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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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와 이씨 양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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