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볼 시간이 없는데 학생이 권해서 챙겨 본 미드가 하나 있다. ‘더 체어’, 미국의 대학에서 한국계 여성이 학과장이 돼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망해가는 대학에서 인문학의 대명사 영문과도 여러 문제에 봉착한다. 대학의 구조조정에서부터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운 학생들의 요구 사항까지, 대학 본부도, 학과 교수들도 해결하기 어려운 골치 아픈 일들을 학과장에게 떠넘긴다.
옛 방식을 고수하는 꼰대 교수도 있고, 전통적인 입장에서 보면 수긍하기 힘든 방식으로 가르치는 젊은 교수도 있고, 사건만 만드는 어설픈 천재형 교수도 있다. 입양한 아이를 혼자 키우며 미국 사회에서 힘없는 여성·소수자로 살아가는 학과장은 매일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그 노력이 직장에서 제대로 인정받는가? 그럴리가! 자리를 내려놓는 과정 또한 자못 씁쓸하다.
곳곳에 유머 코드가 깔려 있어 웃으며 봤지만 내가 학과장으로 일할 때 겪은 여러 일들이 겹쳐 떠오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비단 영문과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공감할 만한 대학의 속살을 어찌 이리 생생히 보여주는지.
드라마는 상상이 아니고 정확히 현실을 반영한다. 공감하는 분들이 참 많아서, 내가 겪은 일들이 나만의 일은 아니구나 싶었다.
일을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 바로 자세다. 늘 그렇듯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 구성원들의 책임 있는 자세가 일의 향방을 결정한다. 팔짱 끼고 방관하는 이도 있고 내 일처럼 아파하는 이도 있다.
‘더 체어’에서 학과장이 울지 않고 일을 해결하려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다. 일하면서 눈물 보이는 걸 싫어하는 나도 몇 번 눈물 보인 적이 있긴 하다. 학과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갑자기 학과장이 돼 동분서주할 때 책임 있는 해결을 요청하다 그만 눈물이 나와 울먹였다.
약한 마음에 호소하는 것 같아 그게 싫어서, 다시는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 이후 울고 싶도록 억울한 상황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물론 안다, 눈물은 죄가 없다는 것을. 그런데 눈물이 가식적인 전략으로 동원되거나 피해자다움의 증거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욱 울지 않으려 하지만, 요즘 들어 새삼 느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눈물에 유난히 약하다는 거다. 어떤 곤혹스러운 일을 벗어나려면 자기가 피해자라며 우는 게 상책이다. 많은 이들이 눈물을 짜내 전략적으로 써먹는 건 그래서인가. 동정과 연민을 얻으려고, 자기 잘못을 가리고 위기를 벗어나려고,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실제로 눈물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하지만 배고파 우는 어린애가 아니라 책임 있는 자리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해야 할 사람이 운다면? 눈물을 쇼로 내세우는 정치인들과 또 이에 모든 걸 용서하는 ‘착한’ 사람들.
책임 있는 자의 진심 어린 눈물과 눈물의 거짓 쇼를 분별하는 법을 우리는 잘 모른다. 우는 사람도 그만 스스로 속는 게 눈물 아닌가. 소리 높여 생떼를 쓰는 것이 점잖은 상식을 이기는 그악하고 허약한 세상에서 우리는 그렇게 눈물에도 자주 속는다. 오늘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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