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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희의 호모폴리티쿠스] 이낙연과 대선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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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희 아시아경제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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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여론조사 지지율 부침은 흥미로운 분석 대상이다. 올해 초 그는 당선권에서 완전히 멀어지는 듯 보였다. 지난달 당내 후보 경선전이 본격화하면서 어느 정도는 회복되었다. 안정적인 이미지가 먹혔다는 관측이다. 그가 집권당 대통령 선거 후보가 될 수 있을까. 당내 선거인단, 특히 호남 유권자들의 최종 선택이 주목된다.


지난해 이 전 대표는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달렸다. 하지만 선거판을 읽을 줄 안다는 호사가들은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는 그의 출신 지역이다. 유권자 수가 적은 호남 출신을 여당 지지자들이 최종 후보로 택할 리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의 어려움. 이제까지 여당 후보들은 대통령을 치받는 전략을 택해왔다. 지난 대선 과정을 관통했던 주요 패러다임이었다.

얼마 전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호남 유권자들을 불쾌하게 했다. 백제 언급이 물의를 빚자 진의가 잘못 알려졌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지역감정은 언제나 폭발할 수 있는 활화산이다. 영·호남은 인구 격차가 워낙 크다. 선거 막판에 지역감정이 발동하면 호남 출신의 승리가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이른바 '호남 불가론'이다.


호남 지역의 인구 비율이 원래 이렇듯 작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영남권에 버금갔다. 충청권보다는 훨씬 많았다. 일제 강점기인 1925년 조사에서는 449만여명으로 영남을 앞지르기도 했다. 당시 영남은 348만여명, 충청은 265만여명이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가 경부선을 축으로 이뤄졌다. 영남 인구 비율이 높아졌고, 호남은 소수파가 되었다. 호남 쪽에는 산업화 혜택을 덜 누렸다는 불만이 깔려 있다. 거기에 정치적 대표성까지 약해졌다.


유력 정당 후보로 대선에 임했던 호남 출신은 2명이다.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정동영 전 의원. DJ는 집권에 성공했다. 충청 출신 김종필 전 총리와 지역 연합으로 이뤄낸 결과였다. 하지만 이인제 전 의원이 상대당을 탈당, 출마함으로써 영남표를 갈라친 게 승리의 요인이었다. DJ와 같은 전략이 없었던 정동영 전 의원은 큰 표차로 패배했다.

카리스마와 정치력에서 이 전 대표를 DJ급으로 볼 수 없다. 유권자의 투표 성향이 변해야 그의 승리 가능성이 열린다. 수도권을 살펴보자. 2000년대 초까지 선거 출마자는 자신의 지역구 유권자들의 원적에 먼저 주목했다. 영남, 호남, 충청 등 유권자의 출신 원적에 맞는 전략이 필요했다. 고향을 떠난 뒤 2세대, 3세대로 많이 넘어간 지금은 다르다. 원적 개념이 희석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한 활발한 정보 교류는 유권자들을 지역정서에서 벗어나게 이끌고 있다. 수도권의 분위기가 영·호남 현지까지 확산될지 이번 대선에서 지켜봐야 한다.


이 전 대표와 현직 대통령의 관계 설정도 선거 분석의 포인트이다. 과거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가 되려면 차별화가 필수였다. 유권자들의 심성은 미묘하다. 추총자라는 인상을 주는 후보에게 인색하다. 집권자를 치받아야 주목받는다. 핍박을 받으면 동정 여론이 솟는다. 권력의 압박을 헤쳐나가면서 스타가 탄생한다.


1987년 대선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후계자에게 "나를 밟고 넘어가라"고 했다. 노태우 후보는 그런 분위기에서 당선됐다. 하지만 취임 후 '5공 청산' 과정에서 전임자를 지켜주지 않았다. 국민들의 정치 감각 수준도 날카로워졌다. 현직 대통령이 희생하는 척하는 게 먹히지 않았다. 이후 집권당 후보들은 청와대를 향한 비판 강도를 높여 차별화를 시도했다. 결국 대통령이 탈당하는 사례가 반복되었다.


이 전 대표는 올 들어 지지율이 하락하자 역(逆) 차별화를 선택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과거 패러다임으로 볼 때 표의 확장성에 도움이 안 되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예전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 전 대표의 ‘대통령과 함께’ 캠페인이 일정 부분 효과를 발휘했다.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40% 안팎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 힘이 되고 있다. 임기 말 현상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선거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 또다른 변수가 나타날 수 있다. 전국 지지도 확산을 위해 차별화의 유혹은 언제나 강렬하다. 이 지사 역시 아직은 본격 차별화에 신중하다. 문 대통령 지지층과 척을 져서는 당내 경선 승리를 담보하지 못한다. 가뜩이나 백제 거론으로 호남의 심기를 건드려 놓았는데 더 모험을 하기가 쉽지 않다.


여권 지지자 가운데 이 지사를 싫어하는 이들을 꽤 만난다. 그들의 고민은 깊다. 이 전 대표를 택하고 싶다. 그러나 본선에서 이길 수 있을까. 이 지사가 가진 몇몇 약점을 감안할 때 이 전 대표로 승부를 거는 것이 승리 확률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는 이도 있다. 일부 지지자는 극단적이다. 이 지사가 될 바에는 차라리 야당에 넘겨주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당선 후 보상과 전임자 보호 측면에서 이 지사가 미덥지 않다는 것이다. 일각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다면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은 그야말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게 된다.


유권자들의 정치 의식은 높아졌다. 40여년 언론인으로 지켜본 선거판은 '밀당'을 떠올리게 한다. 대선 후보와 주요 정당, 그리고 한 표를 행사하는 이들 간의 미묘한 신경전이다. 단기간 볼 때는 유권자들이 변덕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긴 흐름으로 보면 집단이성이 엿보인다.


지역감정과 정치보복. 지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과거 적폐를 청산하는 과정의 부작용이다. 너무 심각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이 시대를 사는 모두의 책무다. 문제는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상대를 쓸어버리겠다는 엄포가 득표에 도움이 되는 현실이다. 누구를 통해서라도 선거판의 상투적 틀이 변하는 단초가 나타나길 바란다. 그래서 '라떼는~'을 외치며 옛 사례를 강조하는 선거 전문가들을 머쓱하게 했으면 한다.


이목희 아시아경제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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