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숨과 비판 섞인 법조계…"대법보다 정부 눈치 보고 판결"
[아시아경제 김형민 기자] 변호사들에게 법정에서의 패배는 늘 쓰다.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 변호사들은 조금 더 그렇다. 업무량이 많고 발로 뛰어야 하기 때문. 대부분 일본 정부 당국, 일본에 있는 기업 등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일본대사관을 밥 먹듯이 들린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피해자들을 돌보며 일본 언론들의 반응도 살펴야 한다. 태극마크만 달지 않았을 뿐, 그들을 한일전에 임하는 이른바 '국가대표'의 사명감이 있다.
그래서 소송에서의 패배는 더 아프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80여명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하자 이들은 답답해 하며 한숨부터 쉬었다. 이 판결은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피해자들의 위자료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 결정을 뒤집은 것이어서 더 논란이 되고 있다.
한 변호사는 "대법관 13명이 참여하는 대법 전합의 결정은 배제하고, 마치 야구에서 주자가 나갔을 때 감독이 사인을 보내는 것처럼 정부가 보낸 사인을 보고 판결한 거로밖에 안 보인다"고 일갈하기까지 했다. 재판부가 정부의 눈치를 보며 판결했다는 것이다.
이런 의구심은 법조계 관계자 다수가 하고 있다. 정황상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는 목소리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18일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에 "곤혹스럽다"고 말하고 법원들이 자세를 고쳤다.
이 발언은 10일 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34부의 판결 때문에 나왔다. 당시 재판부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고 두 달 후 이 소송은 법원 정기 인사로 재판부가 새롭게 바뀐 뒤 승소한 할머니들이 일본으로부터 소송비용을 받을 수 없다고 결정했다. 재판장이었던 김양호 부장판사는 "국가가 원고들(위안부 피해자)로 하여금 납입을 유예하도록 한 소송비용 중 피고(일본국)로부터 추심할 수 있는 소송비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 판사는 이때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 지난 7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도 각하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입은 이용수 할머니 등 20명의 손해배상 청구도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에서 각하됐다. 이 때문에 또 다른 변호사는 문 대통령의 해당 발언이 "서운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 사이 우리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문 대통령이 오는 11~13일 영국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가운데 곧 한미일 또는 한일 정상회담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에서 일본 소송들을 각하, 우연일 지도 모르나 이런 상황을 보는 피해자들, 변호사들, 법조계는 불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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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지난 7일 판결로 '불신의 아이콘'으로 낙인 찍힐 위기에 놓였다. 후폭풍이 거세다. 판결한 김 판사를 탄핵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청와대에 올라 20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공무원노조 법원본부와 정의기억연대는 판결을 규탄했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지난 9일 정기 수요시위에서 "역사의 시계를 식민지 경성 재판부로 되돌렸다"고 재판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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