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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법률가, 관료 그리고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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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희 아시아경제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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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타계한 이한동 전 국무총리의 별호는 일도(一刀). 단칼에 결판낸다는 뜻이다. 1980년 정치권에 들어와 국회의원 6선을 했다. 판검사 경력과 중후한 풍채. 외양으로 '일도'라고 불릴 만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당시에는 공안검사보다 강력한 군 출신이 정치권을 장악했다. 보안사 준위였던 이상재 전 의원이 집권여당을 좌지우지했다. 아랫사람이 설치는 게 '일도' 선생에게 얼마나 못마땅했을까.


이 전 총리를 따르던 이들은 '폭탄계'로 불렸다. 박재홍·김영구 전 의원 등. 만나기만 하면 독한 양주폭탄주를 수십 잔씩 들이켰다. 속상한 마음을 달래려는 듯했다. 정치판의 단련을 거치며 그는 별호의 특성을 잃어갔다. 결국 '타협의 정치인'이라는 평가로 여야를 넘나든 생애를 마쳤다.

여의도 정치권은 용광로와 같다. 이제까지의 분류는 단순했다. 금배지를 단 자와 못 단 자. 의정 단상을 한 번이라도 밟아야 진정한 정치인으로 대우받았다. 내부 암투와 견제가 어떤 세계보다 복잡했다. 지난 경력의 장점을 살려 나가기 힘들었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여론조사에서 선두권을 달리는 이들은 국회의원 무경험자들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대선에서 당 후보 경선에 나선 이력이 있다. 그럼에도 국회의원은 못 했다. 정치의 진한 맛은 덜 본 셈이다. 야권의 유력 후보로 떠오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제 정치 입문 절차를 밟고 있다. 러브콜 대상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최재형 감사원장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정치 전반이 바닥을 치는 지금, 여의도의 때가 덜 묻은 쪽이 유권자들의 호감을 산다. 그러나 구름 위에만 머물 수 없다. 오물에 뛰어드는 게 불가피하다. 원칙과 단호함을 앞세운 법률가, 포퓰리즘을 벗어나 백년대계를 지향하는 관료. 이 지사, 윤 전 총장, 최 원장 등 3인은 법률가다. 김 전 부총리는 경제관료 출신. 각자의 장점을 살리면서 정치에 적응하는 것, 어려운 일이다. 이 전 총리처럼 정체성이 모호해지면 실패한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은 경력의 화려함과 진흙탕 정치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은 인사들이다.

가장 고심하는 이는 윤 전 총장일 것이다. 주변이 법률가들로 둘러싸여 있다. 검사 출신들이 앞장서는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렇다고 노회한 정치인들과 깊게 엮이기는 싫다. '칼잡이'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야 하나. 이 전 총재처럼 '알부남(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으로 승부를 걸 것인가.


이제 '직업이 정치인'인 시대는 지나갔다. 사회 각계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정치를 이끌어야 한다. 법조인과 관료들의 원칙과 정확성. 그러한 장점을 정치가 잡아먹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회의원의 역할을 폄하하는 얘기가 아니다. 금배지로 대변되는 구태정치의 반복이 싫을 뿐이다. 국민의힘 대표 경선에서 '이준석 돌풍'이 일고 있다. 금배지에 대한 반감이 여의도 정치판을 바꿀 정도로 무르익었다.


정치의 학문적 정의는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일'이다. 그에만 골몰하면 욕먹는 행태를 답습한다. 목표가 더 중요하다.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해야 한다. 모처럼 직업 정치인이 아닌 이들이 유력 대선주자에 올랐다. 그들의 장점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게 국가를 위해 바람직하다. 유권자들의 혜안 역시 중요하다.


이목희 아시아경제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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