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 광주의 기억으로 본 미얀마
어렸을 때 가장 충격적인 기억 중 하나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것이다. ‘국민학교’ 시절 친구 집에 놀러 갔었는데, 친구가 무서운 비디오가 있다면서 보여준 것이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이 속칭 ‘광주 비디오’라는 것은 성인 되서야 알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린시절에 내가 봤던 것이 광주 비디오였을 것으로 추측만 할 뿐이다. 띄엄띄엄 남은 내 기억을 가지고는 정확히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친구가 보여준 비디오를 보고 느낀 감정은 두 가지였다. 먼저 공포다. 온통 피범벅이 가득한 화면, 곳곳에서 자행 된 참상과 시신은 어린 나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것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저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내가 비디오를 보던 시점과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벌어졌다는 사실이었다.
또 다른 느낌은 감사함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그 영상을 외국인이 촬영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비디오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외국인들이 참상을 알리기 위해 광주를 찾았다. 위험한 곳에 뛰어든 용기도 그렇지만, 먼 타국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에 관심을 가져줬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했다. 그들은 군부에 의해 고립된 광주를 잊지 않았다.
얼마전 하나은행이 국내 체류중인 미얀마 노동자들에게 한시적으로 송금 수수료를 무료로 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문득 광주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미얀마는 지금 혼돈 그 차제다. 최근에는 현금이 부족해지고 있다. 시스템을 믿을 수 없는 시민들이 현금을 최대한 손에 쥐고 있으려 하기 때문이다. 군부가 2월부터 하루 예금 인출액을 제한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돈을 찾기 위해 지금도 새벽부터 은행 자동인출기(ATM) 앞에서 긴 줄을 서고 있다. 2.5%에 불과했던 ATM 인출 수수료는 15%까지 뛰어 올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은행 이체 금액을 현금으로 전환해 주는 ‘현찰깡’의 수수료는 13%가 넘는다고 한다. 업자에게 내 통장의 돈 1만원을 보내 주면 8700원만 현찰로 받는 셈이다.
군부는 일정 금액 이상의 현금을 소지하고 있으면 처벌하고 있지만 상황을 타계하기는 역부족이다. 과거 군부는 현금이 조금이라도 모자르면 돈을 마구 찍어내 인플레이션이 고민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미얀마 조폐국에 현금 생산을 위한 원자재와 부품을 공급하는 외국 기업이 군부의 민간인 시위대 강경 진압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3월 말부터 거래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은행원들도 대규모 시민 불복종 운동(CDM)에 참여하며 파업을 진행하고 있어 은행 업무가 힘든 상황이다.
하나은행이 실시한 송금 수수료 무료 정책이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현찰을 구하기 위해 거액의 수수료에 허덕이는 미얀마인들에게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돈을 보내거나 현지에서 돈을 받는 미얀마인들, 그 가족들과 친지들은 이번 사태가 끝나도 한국의 어떤 은행 한 곳이 자신들을 잊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마치 내가 광주 비디오와 용기 있던 외국인들을 기억 하듯 말이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텀블러에 담아 입 대고 마셨는데…24시간 지난 후...
성기호 금융부 차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