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 "팔십 먹으면 성숙할 줄 알았지…근데 아니더라고"
연극 '해롤드와 모드' 모드役 박정자
2003년 "여든까지 이 작품 공연할 것"
막연했던 소망이 어느덧 현실로
현역 계속…8월 '빌리 엘리어트' 출연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나이 팔십 먹으면 내가 굉장히 성숙할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미성숙하다. 그런데 배우는 너무 성자처럼 지혜로우면 안되니까(웃음)."
배우 박정자의 첫 인상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았다. 그는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테이블 위 꽃바구니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이거 해바라기야?"라며 해맑게 웃었다. 삐죽삐죽한 스포츠머리를 하고 나타난 그는 까불기 좋아하는 개구쟁이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박정자는 한국 연극계의 대모다. 내년이면 연기생활 60년을 맞는다. 그는 올해 팔순 기념으로 자신의 시그니처 연극 ‘해롤드와 모드(19 그리고 80)’를 오는 5월1일부터 23일까지 공연한다. 올해로 7번째이자 마지막이다.
‘해롤드와 모드’는 작가 콜린 히긴스(1941~1988)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동명영화(1971)로 먼저 알려졌다. 이후 다시 그에 의해 연극(1973)으로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는 1987년 초연됐다. 극단적 선택을 꿈꾸는 19세 소년 해롤드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80세 모드와 만나 사랑하게 되는 다소 파격적인 소재의 작품이다.
박정자는 2003년 ‘해롤드와 모드’ 첫 출연 당시 막연하게나마 "여든살까지 매년 이 작품을 공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은 어느덧 현실이 됐다. "당시에는 공연 첫 회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작품을 여러 번 하다 보니 나보다 관객들이 더 좋아하더라. 그런 모습을 보면서 누가 시킨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 이 공연을 80세까지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른바 박정자의 아름다운 프로젝트다. 그런데 이건 혹시 기네스북에 안 오르나요."
박정자에게 모드는 롤모델이다. 모드는 극에서 매연 속에 죽어가는 가로수를 뽑아 장례식장으로 옮겨 심는다. 동물원의 바다표범을 몰래 풀어주기까지 한다. 박정자도 이렇게 자유분방하고 순수한 매력을 지닌 모드처럼 살고자 노력했다. 그는 모드의 나이까지 바짝 쫓아와 자기만의 피날레를 시도하고 있다. 자신과 모드를 온전히 일치시켜 무대에서만 존재하는 모드를 세상 밖으로 탈출시키기 위함이 아닐까. 이제 박정자는 모드고, 모드는 박정자다.
"모드가 해롤드에게 ‘매 순간 새로운 걸 해보자’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나 스스로도 매일 이렇게 다짐한다. 때문에 가끔 엉뚱한 모험을 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옆에서 손숙이나 윤석화가 가끔 어이없다는 듯 바라본다. 하지만 그 엉뚱함이 때로는 에너지로 바뀌어 세상 밖으로 나올 수도 있으니까…. 배역도 항상 새로운 걸 추구한다. 왕비였다가 무당이었다가 시어머니였다가. 어떨 땐 연출자가 생각해놓지도 않은 역할을 요청해 따내기까지 했다. 항상 모험정신을 갖는 것. 연기인생 60년을 그렇게 정리하고 싶다."
공연 연습에 들어간 지 아직 2주도 채 안 됐지만 박정자는 빨리 관객과 만나고 싶다. "주변에서 온라인으로 공연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것처럼 끔찍한 게 없다. 연극은 아날로그가 본질이며 디지털이 될 수는 없다. 제가 성숙하지 못한 것도 여전히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해롤드와 모드’ 연출은 배우 윤석화가 맡았다. 연극계 두 거목인 박정자와 윤석화는 절친인 것으로 유명하다. 10년 전 박정자가 "연출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 윤석화는 "지금은 안 된다"며 거절했다. 그 뒤 박정자가 "그럼 내가 팔순이 되면 꼭 네가 해야 돼"라고 재촉하자 윤석화는 마지못해 "네"라고 답했다. 윤석화는 "그땐 까마득했는데 이렇게 시간이 흐를 줄은 몰랐다"면서 "연출로서 자신감을 갖고 하는 건 아니고 선생님과 한 약속과 우정을 위해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이끌어 가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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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의 여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오는 8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 할머니 역으로 4명의 10대 빌리들과 함께 열연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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