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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하와이와 새벽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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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붓으로 칠한듯한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백사장, 에메랄드 빛 물색이 섬 곳곳을 물들여 가는 곳. 저녁 무렵이면 발갛게 물든 석양아래 흘러나오는 ‘알로하 오에’라는 노래 한마디. 하와이 얘기다.


10여년전 한 IT기업의 글로벌 컨퍼런스 참석을 위해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의 힐튼 리조트에서 1주일간 머물렀다. 흔치 않은 기회였지만 컨퍼런스 일정이 빡빡해 사흘 내내 호텔 연회장에만 머물러야 했다. 유일한 낙은 컨퍼런스 도중 쉬는 시간에 호텔 밖에 잠시 나가 같이 출장간 기자들과 잠시 담배 한대 피우는 시간이었다. 컨퍼런스홀과 가까운 흡연 장소를 찾다보니 호텔 뒷편, 직원들도 함께 쉬어가는 곳을 이용하다 보니 눈앞에 생경한 풍경이 펼쳐졌다.

호텔 로비에서 자주 마주치던 백인 직원들 대신 한번도 보지 못했던 하와이 원주민들이 거기 있었다. 작업복을 입고 목에는 땀을 훔치기 위한 수건을 두른 이들이 삼삼오오 호텔 그림자 밑에서 잠시의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일정을 마친 뒤 남은 이틀 동안 동료 기자들과 차를 렌트해 진주만을 비롯한 하와이 관광을 떠났다. 세계적인 휴양지답게 가는 곳마다 전세계 인종을 모두 만날 수 있었지만 하와이 원주민은 오히려 보기가 어렵다. 마지막 저녁 식사 자리에서 문득 생각이 나 현지 가이드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별것 아니라는 듯 가이드는 원주민들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훌라댄스 공연장 등을 제외하면 모두 빌딩 안에서 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설명이다. 하와이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학교들이 있지만 원주민들의 교육, 생활여건은 어렵다 보니 과거 그 땅의 주인이었지만 외국인 노동자 취급을 받고 있다고도 했다.


가이드가 오가는 길에 홈리스들을 많이 보지 않았냐고 묻는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멀쩡해 보이는 이들이 하와이 곳곳에서 술에 취해 있거나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미국 본토에서 편도행 비행기를 타고 온 백인들이라는 얘기가 이어졌다. 처음부터 홈리스는 아니었고 서핑 등을 가르치던 백인들이 흥청망청 살다가 말년에 홈리스가 된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청소, 주방일 등 이들이 일할만한 곳들이 제법 있지만 ‘원주민들이나 하는 일’ 정도로 치부하고 백인들은 차라리 길거리 구걸을 선택한다고 한다. 다소 불편한 진실이었지만 누군가 궂은 일을 하는 이들 덕분에 누군가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다는 이면을 볼 수 있었던 때다.

최근 새벽배송 서비스에 푹 빠졌다. 오늘 저녁에 주문을 해도 내일 아침 물건을 받을 수 있다 보니 자주 사용한다. 오랫동안 별 변화없던 이커머스 시장의 새로운 혁신에 나도 감탄하며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다음날 꼭 필요한 물건들을 주문했지만 지금은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도 새벽배송으로 주문하고 있다.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예전 하와이에서 들었던 생각이 다시 난 까닭은 새벽배송을 하던 택배노동자의 죽음 소식 때문이다. 우리가 잠자고 있는 사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물건들을 배송한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자도 늘어나고 경쟁이 붙으며 배송 경쟁은 더 심화되고 있다. 낮에서 밤으로 배송 시간이 달라진 것을 기업들은 혁신이라 부른다. 결국 혁신은 누군가의 노동에서 시작되는 셈이다. 스스로를 혁신가라고 부르고 있는 이들이 뒤를 한번 돌아볼때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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