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퇴임 앞둔 박용만 "'규제 샌드박스' 가장 큰 성과…큰 물꼬는 못 바꿔 아쉽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규제 샌드박스' 시행"
"최태원이 이끄는 대한상의, 앞으로 대기업 목소리 더 반영할 것"
"한국 경제 전환기에 놓여"
"규제 개혁, 기업은 어려운 상황 속 변화해야 하는 이중고"
[아시아경제 황윤주 기자] 박용한 대한상의 회장이 오는 3월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대한상의 회장이 임기를 채운 것은 고(故) 김상화 전 회장 이후 20년 만이다. 박 회장은 지난 7년 8개월 동안 정부와 회의하는 데 211시간을 쏟았고, 국회에서 72시간 45분을 보냈다. 재임 기간 동안 재계와 정계, 재계와 국민 간 소통을 자처한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다음은 박 회장과 인터뷰 전문이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 '규제 샌드박스'. 재임 기간 동안 가장 많이 절실하게 호소한 게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가오는 시대는 우리가 상상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기술과 사업들이 태동한다. 기존 법과 제도로는 미래를 담을 수 없다. 국회와 정부를 찾아가서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잘 안 됐다. 입법부는 입법부대로,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바꾸지 못할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법과 제도를 우회해 먼저 일을 벌이고, 시장에서 실증을 통해서 법과 제도를 바꿀 당위성을 찾자는 게 샌드박스였다. 실제로 해보니 그 생각이 맞았다.
- 규제 개혁 성과와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 샌드박스법 통과시킨 것부터 시작해서 지원법안을 이끌어낸 것이 다 성과다. 아쉬운 점은 큰 물꼬를 바꾸는 점은 못했다는 것. 큰 물꼬를 바꾸는 이슈가 몇 개 있다. 큰 물꼬를 못 바꾼 것이 안타깝다.
질문 나온 김에 말하면 (최근 규제입법들이) 기업들을 굉장히 힘들게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상법개정안, 공정거래법개정안, 중대재해법 등 일련의 법안이 21대 국회에 쏟아져서 우려가 굉장히 높아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에 부담이 늘어나는 여러 변화는 비단 이번 정부에서만 생긴 것이 아니다. 통상임금 이슈, 기업소득환류세제는 전 정부에서 시작됐다.
기업 규제의 필요성을 모두 부인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거부감과 우려가 왜 이렇게 부각되는지 보면 현재 한국은 전환기에 놓여있어서다. 과거 한국경제를 견인해온 업종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다시 성장하기 위한 고민이 굉장히 깊어지는 시기이다. 더불어 주력 산업들이 신흥국들에 의해 잠식당하는 상황이다.
상당수 기업이 변화에 앞서가지 못하고 있다. 환경이 적대적으로 바뀌니 그 자체로 어려운 상황인데, 변화를 요구하는 부담이 더 늘어나니까 특히 어려운 기업에서는 목소리가 크게 나올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변화에 저항한다고 볼 것이 아니다. 규제 수용 여부보다 우리 경제가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산업 전체에 대한 반성, 새로운 시각, 그에 맞춰서 환경을 바꿔주는 것이 필요한 시기다. 이는 정책을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시장 참여자들이 못 따라가니 목소리가 커졌고 정부와 기업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기업들이 느끼기에 지난 정부 때부터 단기간에 너무 부담이 많아진 것같이 느끼는 게 현실이고. 그러나 근본원인을 파고 들어가보면 필요한 변화를 수용할 만큼 기업들의 체질이 건강하지 못한 면이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업들은 기업규제 입법과정서 상의 대응이 문제 있었단 의견도 있다
▲ 문제가 있었다고 얘기한다면 어폐가 있고, 성에 차지 않았다고 해야 맞다. 결과를 놓고 보면 그분들이 불만이 가지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거기 대해선 할 말이 없다. 방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단체가 목소리를 내고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처럼 성명서를 내고 반대 의사를 강력히 표현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슈에 대해 사실을 내놓고 찬반을 논의하고 지지를 받아야 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안 때도 줄기차게 요구한 게 공청회를 열어 모든 이슈를 테이블 위에 놓자고 했다. 문제는 입법부가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공청회를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안에 거의 가깝게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실망했지만 상의가 택한 방법이 옳았다고 믿고 있다.
- 대한상의 입지가 높아진 배경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다만 전경련 위상이 떨어져 있으니 재계를 대변할 경제단체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앞으로 경제단체의 역할과 방향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 다른 단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상의 회원사에도 10대 그룹이 있고, 4대 그룹 총수가 상의 회장이 되셨으니 그 부분은 자연스레 해결되지 않겠나? 상의에서 (최태원 SK 회장을)만장일치 추대한 건 그런 뜻이 있다고 본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5대그룹의 향배가 중요하다. 4대 그룹의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이 됐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후임자로 최태원 회장을 추천한 이유가 4대 그룹 총수이기 때문인가?
▲ 그게 다는 아니다. 기업규모가 상당한 영향력을 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5대 그룹이 우리 기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상의가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대변하지만, 그 정도 규모의 총수가 들어오면 대변하는 영향력이 커지는 건 사실이니 그 부분을 감안했다. 또 이번에 상의 회장 구성하는 것을 봐도 미래산업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미래 방향에 대해 나보다 훨씬 잘 대변하실 수 있는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봤고. (최 회장이) 가지신 생각 중 '사회적 가치'는 이제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조류로 자리잡았다. 그런 면에서도 상당히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 앞으로 상의가 대기업의 목소리를 더 크게 낼 것으로 봐도 되는가?
▲ 꼭 그렇지 않다. 대기업의 목소리를 더 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에는 중견 중소기업에 집중하느라 대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데 소홀하지 않았나 반성한다. 그동안 경제 상황이 너무 어려웠고, 경제상황이 어려울 때 제일 피해를 보는 기업이 한계 업종과 작은 기업들이다. 그래서 (한계 업종과 중견·중소기업에) 집중을 했는데, 이제 최 회장이 오고 코로나19도 벗어날테니 대기업 의견을 상당 부분 대변할 것으로 본다.
- 그동안 내지 못했던 대기업의 목소리를 강화할 것이라는 의미인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다른데 상생이나 동반에 대한 생각도 강한 분이다. 이번에 새로 구성한 회장단은 창업해서 자수성가한 젊은 창업가들이다. 그러니까 전경련이 과거에 하던 식으로 대기업의 이해를 강력히 대변하는 그런 방식은 아닐 것이다. 내 짐작이다.
- 개인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데, 최근 우리 사회 분배 정의 실현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나 생각을 듣고 싶다.
▲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회안전망을 통한 직접적인 분배 정책에 신경을 써달라고 여러번 말하기도 했다. 분배 정책에 있어 재정의 역할로 할 것인가, 민간이 자발적 역할로 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절대적으로 재정의 역할이 먼저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 재정을 통해 양극화가 줄어드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민간에서도 자발적으로 사회를 위해 나서는 것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하는 봉사활동은 조금 다르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쓴 기도문 내용 중 '그늘에 계신 분들하고 안락한 사람들은 같은 나무에 열린 열매임을 깨닫게 하소서'라는 내용이 있다. 우리가 그분들을 돕는 것은 같은 나무에 달린 같은 열매로서의 의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다. 내게 안락한 시스템인데 누군가에게 불편한 시스템일 수 있다. 같은 나무 아래에서 나는 혜택을 보고 누구는 그렇지 못하면 자발적으로 도와야 한다. 내가 봉사를 하는 이유다.
- 퇴임 후 계획은 무엇인가?
▲ 우선은 내 소임을 다할 생각이다. 두산인프라코어 이사회 의장으로서 언제 마무리가 될지 모르지만 끝까지 소임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정치에 뜻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거나 젊은이들의 꿈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아직 정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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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임명직 제안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 모르겠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 생각은 해보겠다. 하지만 정치는 나한테 맞지 않다. 잘 할 수도 없다. 특히 나처럼 치열하게 경영한 사람은 기업인으로서 생산성과 수익성을 따라가는 사고가 있다. 그런데 정치의 영역은 생산성과 수익성으로 재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목표를 갖고 앞으로 나아갈 때 뒤쳐진 사람들을 돌봐야 하는 것이 정치다. 그래서 나는 사업하는 사람이 정치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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