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페이건 '침대 위의 세계사'
에디슨 말처럼 잠은 부도덕한 습관일까…

영화 '파이트 클럽'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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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ㅇㅇㅇ침대는 이 광고 문구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잠이 약이다"라는 이탈리아의 오랜 속담을 변형해 소비심리 자극에 성공한 것이다. 예부터 사람들은 숙면을 건강의 핵심으로 여겼다. 웨일스의 작가 윌리엄 본은 1612년 소책자 '검증된 건강관리법'에 이렇게 썼다. "잠은 정신을 강화하고 몸을 편안하게 한다. 체액을 진정시키며 슬픔을 덜어주고 분노를 누그러뜨린다."


신체와 정신에 변화가 일어나는 공간은 침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주변을 친숙한 물건들로 꾸몄다. 잠들기 전 침구에 수놓인 종교 이미지를 바라보며 기도했다. 오늘날 거의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잠을 단순히 피로가 풀리는 과정으로 생각한다. 꿈을 꿔도 혼자만 간직한다. 그렇게 침대 위에서 보내는 시간은 공백이 돼버렸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브라이언 페이건 인류학과 명예교수가 쓴 '침대 위의 세계사'는 빠진 퍼즐 조각을 채우는 인문서다. 침대의 진화와 그 위에서 인류가 벌인 숱한 일을 상세하게 나열한다. 주제별로 시공간을 아우르며 침대의 역할은 물론 민족·문화·종교·관습·가치관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같이 정해진 일정에 따라 살아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간과되는 현상들이다.


현대인들은 엄격한 시간표 속에서 제시간에 자고 깨어난다. 수면을 단순히 많이 이용하면 좋은 상품처럼 여긴다. 이런 생각은 어린 시절부터 문화적으로 주입되고 있다. 학교 일정에 맞춰 일어나야 하고 늦잠을 자면 벌 받는다.

산업화를 열렬히 옹호한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은 보편적인 학교 교육이야말로 민주공화국의 핵심 요건으로 봤다. 달리 보면 다음 세대에게 직장의 가차 없는 시간표를 따라가도록 미리 준비시키는 과정이었다.


[이종길의 가을귀]알람에 갇혀버린 침대 원본보기 아이콘


회중시계, 출근부, 열차 시간표가 생기기 전까지 잠은 자유로웠다. 늦게 자면 깨어나는 시간도 늦어지고 두 번째 잠이 밀려드는 정도였다. 예컨대 영국 작가 제프리 초서(1343~1400)의 '수습기사의 이야기'에서 타타르 왕국의 공주 카나세는 해가 떨어지면 곧장 잠들어 이른 아침에 일어난다. 반면 동료 순례자들은 늦게까지 깨어 있고 한낮이 될 때까지 잔다.


수면의 질은 지금이 더 좋을 수 있다. 공공 조명과 각종 치안서비스로 자는 시간이 훨씬 안전해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늘날 온갖 수면 문제가 있지만, 어찌 됐든 안전한 느낌을 받는 것은 수면에 이롭다"고 말한다. "수면 과학자들에 따르면 애완 고양이와 가축용 말은 집이나 우리에서 보호받고 있을 때 잠을 더 많이 잔다고 한다. 어쩌면 현대의 수면 손실은 이렇듯 사라진 이익과 균형을 맞추려는 결과일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수면 회피가 생산성을 향상시킨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빌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 등 지도자 상당수는 수면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한니발(기원 전 247~183), 나폴레옹 1세(1769~1821) 같은 역사상 위대한 장군들도 적게 자는 것으로 칭송받았다. 윈스턴 처칠(1874~1965)도 밤 늦게 침대에 들어 네 시간만 잤다. 대신 한낮에 토막잠을 청해 장군·장관들과 침대에서 자주 회의했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를 물리칠 전략도 침대에서 세웠다.


영화 '인셉션'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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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잠이 충분하지 않으면 괴로움을 느낀다. 처칠은 그것을 '블랙 독(black dog)'이라고 표현했다. 하루 네 시간만 자도 건강에 전혀 지장이 없는 부류도 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더 많이 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멀리 했다. 그는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썼다. "훗날 사람들은 침대에서 더 적은 시간을 보낼 것이고, 100만년 뒤에는 전혀 잠들지 않게 될 것이다. 잠은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습관이다. 너무 긴 잠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인류의 효율성에 해를 끼친다." 당시 그의 나이 80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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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침대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할까. 저자는 적절한 시간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이의 수면이 산업화 이전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수면제에 손을 뻗거나 알람시계에 기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말이다. 스스로 일하면서 취침 시간을 지켜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한다. "자연적인 수면 습관이 이중 수면 패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밤중에 깨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 어쨌든 침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으니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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