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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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쯤일까. 지인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하고 있는데, 고등학교 후배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요지는 이렇다. 자신의 의뢰인이 의사이고, 법원에 일반회생(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회생절차)을 신청했으나, 채권자들의 반대로 폐지되었다. 달리 방법이 없어 법원에 개인파산신청을 하였고, 파산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2년이 넘도록 면책에 대한 아무런 결정을 해주지 않아 의뢰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실무적으로 고소득이 예상되는 직업(의사, 변호사 등)을 가진 개인이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들이 곧바로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경우는 드물고, 일반회생을 신청하였다가 채권자들의 반대로 폐지된 후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의사의 경우를 보자. 일반적으로 의사가 개업을 하려면 병원을 운영할 공간은 물론, 고가의 의료 장비가 필요하다. 통상적으로 수억 원이 넘는 의료 장비를 리스로 구입한다. 병원을 오픈하고 생각과 달리 잘 되지 않을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매달 리스료를 제대로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급여도 주지 못하는 상황에 부딪친다.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의사는 법원에 일반회생을 신청한다. 개인에 대하여는 개인회생절차라는 간단한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만, 통상 의사는 고가의 의료 장비 리스 등으로 채무액이 많기 때문에 개인회생절차를 이용할 수 없다. 개인회생절차를 이용하려면 무담보채무가 5억 원, 담보부채무가 10억 원 이하여야 한다. 두 가지 요건을 동시에 충족하여야 한다. 일반회생이란 개인이 통상적으로 10년 동안 장래에 벌어들일 수입으로 채무를 나누어 변제하고, 나머지 채무를 면제받는 절차를 말한다. 문제는 10년 동안 나누어 변제하는 회생계획이 수행되려면 일정액 이상의 채권자들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를 가결요건이라 한다. 채권자에는 담보가 없는 일반채권자와 담보가 있는 담보권자가 있다. 가결요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일반채권자의 경우 채권액의 3분의 2 이상, 담보권자의 경우 채권액의 4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채권자들은 의사가 돈을 많이 벌거라고 여겨 채무를 감면하는 회생계획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면 결국 회생절차는 폐지된다.


회생절차가 폐지되면 의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개인파산밖에 없다. 문제는 의사가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하면 담당 법관은 면책을 주저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수익이 예상되는 의사에 대하여 면책을 해주면, 기존 채무는 면책 받고 장래 수입은 본인의 소득이 되는데, 이것이 정의인가라는 생각에서다. 그렇다고 면책불허가결정도 못한다. 왜냐하면 면책불허가사유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데, 딱히 면책불허가사유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건을 방치해 두는 것이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파산을 신청한 의사에게 돌아간다. 파산선고를 받았으니 의사도 못하고, 면책을 받지 못하였으니 새로운 출발도 어렵다. 취업도 못하니 생계도 막막하다.

어찌 해야 할까. 일반회생에서 채권자가 동의하지 않아 달리 구제방법이 없는 경우에는 면책을 고려하여야 한다. 2003년 광주지방법원 수석부에서 개인파산을 맡던 시절 40억 원이 넘는 채무를 지고 있는 의사가 개인파산을 신청한 사례가 있었다. 많이 고민했지만, 결국 면책을 결정했다. 성실한 개인이라면 면책결정을 신속하게 하여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심정적으로 전부 면책이 어렵다면 일부 면책을 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일부면책의 허용 여부에 대하여는 다툼이 있지만(개인적으로 일부 면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내심적 불수용으로 방치하는 것보다는 타협적인 관점에서 일부 채무만을 면책하고 일부 채무는 변제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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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득자라고, 고소득이 예상된다고 합리적 이유 없이 면책에 주저할 이유는 없다. 면책제도를 남용하는 것은 막아야 하겠지만, 신속하게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면책제도의 취지를 깊이 새기면서 면책제도를 운용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 회생법원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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