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환경 더 악화된 中企 “차라리 해외로” 공장이전 가속화
中企 해외투자 2년새 2배 증가 16조7461억
국내설비투자는 14조5000억원에 그쳐
해외투자액이 국내 설비투자를 앞지른 '데드크로스(dead cross)' 현실화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도입 한 가지 때문이기만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도 이유가 아니었다는 말은 못 하겠네요."
경기도 시흥시의 자동차 부품제조기업 B사. 이 회사는 50~299인 사업장의 주 52시간제 도입(유예기간 종료)을 앞두고 국내 생산기지를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있다. 이 회사는 베트남 하노이 박닌공단에 자회사를 설립해 자동차 부품 제조와 함께 신사업으로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부품도 함께 생산할 계획이다. 모든 게 순탄하지만은 않지만 적어도 주 52시간제 때문에 납기 문제로 골치를 썩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게 이 회사 박상훈(가명) 대표의 설명이다.
세제혜택·안정적 환경찾아 해외로
베트남 공장은 5년 전부터 알아봤다. 본격적으로 착수한 건 지난 2017년부터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 외국인 근로자 임금 상승 등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결정적인 건 세제혜택과 인건비 등 안정적인 환경이었다고 박 대표는 덧붙였다.
10년 전 베트남에 자리 잡은 C통상은 현지에서 3700명을 채용했다. 국내 굴지의 신발제조기업이었던 회사는 인건비 등 국내에서는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어 공장을 해외로 이전했다. 본사가 있던 부산에는 디자인과 연구개발 시설, 그리고 최소한의 제조공정 직원 100여 명만 남겨뒀다.
시흥의 B사 같은 경우는 최근 보기 드문 사례다. 동남아에 진출한 제조업 현장의 기업인들은 그 이유로 "나갈 만한 곳은 이미 다 나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중소기업이 사업하기 점점 어려운 환경인데 정부가 추진하는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 같은 것은 현실성 없는 공허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5년 새 3배 이상 급증해 지난해 16조7461억원을 기록한 반면, 국내 설비투자는 5년 전 33조4000억원에서 올해 14조 5000억으로 반토막 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해외투자액이 국내 설비투자를 앞지르는 '데드크로스(dead cross)'가 현실화 된 것이다. 자료 = 한국수출입은행 해외직접투자 통계, 산업은행 설비투자계획 조사.
원본보기 아이콘올 연말이면 해외 공장이전이 국내 신규투자액을 앞지른다. 이 같은 러쉬는 2018년도부터 본격화됐다. 국내 임금 상승과 해외 생산거점 구축이 맞물려 시장규모가 크고 성장세가 뚜렷한 현지에 생산거점을 마련해 시장을 개척하거나 대기업의 해외 투자에 따른 중소기업의 동반진출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해외투자 목적별 신고금액 비중에 따르면 현지 시장진출 목적의 투자비중은 2012년 35.6%에서 2018년 65.5%까지 증가했다. 중소기업의 해외 직접투자금액 또한 2017년 77억1300만달러(약 8조3748억원) 규모에서 2018년 104억2800만달러(약 11조3248억원), 지난해엔 154억2000만달러(16조7461억)로 2년 새 2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내 설비투자는 꾸준하면서도 급격한 감소세다. 산업은행의 2020년 상반기 설비투자계획 조사에서 제조업의 설비투자규모는 79조5000억원으로 전년 실적 대비 11.2% 축소됐고, 중소기업의 설비투자 계획은 14조5000억원으로 전년 실적 대비 19.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33조4000억원이던 설비 투자 규모는 매년 2조~5조원씩 줄어 들어 5년 새 절반 이상 감소한 것이다. 중소기업의 해외투자액이 국내 설비투자액을 앞서는 이른바 '데드크로스'가 눈앞에 다가왔다.
'데드크로스' 눈 앞…어려움 호소에도 바뀐 것 없어
최근에는 우량 협력업체가 현지에 진출한 대기업 생산기지를 쫓아나가는 사례가 더 많다. 도로 포장재 생산기업 로자인의 경우 올해 베트남 사업 확대를 위해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공장준공을 앞두고 있다. 당초 회사의 주력 상품인 스마트 도로 포장재 수출로 동남아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현지에서는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 수요가 더 많아 베트남에 생산기지를 설립해 범용 제품을 생산ㆍ공급하는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는 게 이 회사 신성철 대표의 설명이다.
동남아 등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길 수 있는 업종은 그나마 부러움의 대상이다. 울산 조선소의 협력업체 직원 가족들 사이에서는 300인 미만 사업장까지 주 52시간제를 적용하면 직원들의 임금이 줄어드니 무작정 도입하면 안 된다는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협력업체 연합 단체에서는 일찍부터 정부와 국회에 끊임없이 호소했지만 반응은 그때 뿐이고 바뀐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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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현 중소기업연구원 수석전문위원은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에 각종 규제와 강성 노조까지, 이런 요인으로 중소기업의 국내 경영환경이 악화됨에 따라 해외진출은 늘어나고 국내 일자리 시장은 타격을 입고 있다"고 지적하고 "제조 중소기업의 개발도상국 진출도 저임금에서 현지 시장 개척으로 다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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