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에 할 말 있소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상소문' 공방시대
청와대 청원 게시판 상소문 형식 글 잇따라 올라와
'시무7조', '하교_시무 7조 상소에 답한다', '영남만인소' 등
문재인 정부 비판 상소문 시민들 호평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조선시대 상소문 형식으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글이 연일 등장하면서 한국 사회는 이른바 상소문 공방을 벌이고 있다. 원색적 욕설이 아닌 정중한 문체로 현 정부의 각종 정책 등을 비판하고 이에 다시 반박하는 글도 나오면서 일부에서는 '풍류'라는 해석도 있다.
앞서 지난 12일 작성한 '시무 7조' 청와대 청원 글은 보름여 비공개 상태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해당 글은 공개된 지 하루 만에 청와대 답변 요건인 20만 동의를 넘겨 40만 명 이상이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에 반박하는 림태주 시인의 '하교_시무 7조 상소에 답한다' 글 역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다. 여기에 최근에는 '영남만인소' 글까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영남만인소는 1881년 경상도 예안(禮安)의 유생인 이만손 등 1만여 명의 영남 지방의 유생들이 연명해서 올린 집단 상소다. 조선 후기에 일어난 사회운동을 의미하는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척사만인소(斥邪萬人疏)'라고 부르기도 한다.
◆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나라'를 골고루 경험"
지난 29일 자신을 경상도 백두(白頭) 김모(金某)라고 밝힌 청원인은 "진인 조은산을 탄핵하는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라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제목만 보면 앞서 '시무 7조'를 올린 '진인 조은산'을 비판하는 것 같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 관련 인사들을 풍자하는 내용을 담았다.
청원인은 "이제까지 황상폐하께옵서는 촉화봉기의 정신을 정치에 펼치시려고 취임사에서부터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분 한분도 모두 우리 국민으로서 섬기겠다'고 반포하신 이래 온백성으로 하여금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나라'를 골고루 경험하도록 배려해 주셨음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라고 했다.
또 차기 여권 대선주자이자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인 이낙연 의원에 대해서는 "영의정을 지낸 이낙연은 선대 무현황제(武鉉皇帝·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당시 이를 주도한 당여(黨與)에 합세하고 있었으므로 선대 무현황제에 천추의 한을 남긴 허물이 있다"고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해선 "경기감사 이재명은 성정이 급하고 언사가 격하여 혹여 그 뜻을 이루면 자신의 형수에게 퍼부은 욕설을 황후마마에게 퍼부울 수도 있으니 심히 저어된다"라고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는 "형조판서 조국은 죽창가를 주창하면서 만백성을 이끌고 나섰으니 실로 오천년 역사에 일본국을 상대로 정신승리한 최초의 대첩이 아닌가 사료된다"고 했다.
◆ "5000만의 백성은 곧 5000만의 세상" vs "문장은 화려하나 부실하다"
영남만인소 앞서는 '시무 7조'를 쓴 '진인(塵人) 조은산과 '시집 없는 시인' 림태주 시인이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조은산은 30일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백성 1조에 답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림태주를 향해 "너의 백성은 어느 쪽 백성을 말하는 것이냐. 고단히 일하고 부단히 저축해 제 거처를 마련한 백성은 너의 백성이 아니란 뜻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나는 5000만의 백성은 곧 5000만의 세상이라 했다"며 "너의 백성은 이 나라의 자가보유율을 들어 3000만의 백성뿐이며, 3000만의 세상이 2000만의 세상을 짓밟는 것이 네가 말하는 정의에 부합하느냐"고 비판했다.
앞서 림태주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 올린 글에서 상소문에 임금이 답하는 형식의 글 '하교_시무 7조 상소에 답한다'를 통해 조은산을 비판했다.
그는 조은산의 '시무 7조'에 대해 "문장은 화려하나 부실하고, 충의를 흉내내나 삿(보기에 하는 행동이 바르지 못하고 나쁘다)되었다. 언뜻 유창했으나 혹세무민하고 있었다. 편파에 갇혀 졸렬하고 억지스러웠다"고 비판했다.
림태주는 "너의 그 백성은 어느 백성이냐. 가지고도 더 가지려고 탐욕에 눈먼 자들을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퉁치는 것이냐"면서 "아직도 흑과 백만 있는 세상을 원하느냐. 일사불란하지 않고 편전(임금이 평상시에 거처하는 궁전)에서 분분하고, 국회에서 분분하고, 저잣거리에서 분분한, 그 활짝 핀 의견들이 지금의 헌법이 원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림태주는 1994년 계간 '한국문학'으로 등단했으나 시집은 내지 않았다. 2014년 출간한 산문집 '이 미친 그리움'에는 조 전 장관이 "림태주 시인의 글에서는 밥 짓는 냄새, 된장 끓이는 냄새 그리고 꽃내음을 맡을 수 있다"는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 "정치인들의 원색적 공방 보다 보기 편해"
상소문 형식의 글로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해 공방을 벌이는 모습에 시민들은 정치권 인사들의 공격적 언행보다 보기에 편하다고 평가했다.
40대 회사원 김 모 씨는 "보통 뉴스를 보면 입에 담을 수 없는 수준의 공격적 언행으로 서로 공방을 벌이는 정치인을 많이 보는데, 최근 상소문으로 비판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래도 좀 품격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또 다른 상소문도 올라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30대 직장인 이 모 씨는 "상당히 내용이 길고 또 깊이도 있어 보이는데, 평범한 직장인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얼굴도 공개하고 TV에도 출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소문 공방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진인 조은산은 지난달 28일 새벽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길고 지루한 넋두리에 불과한 글이 세상밖으로 나와 많은 관심과 응원의 말들과 함께 정당한 한 개의 동의를 받게 돼 벅찬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은 졸필이라며 "얕고 설익은 지식을 바탕으로 미천한 자가 써내려간 미천한 글이 이토록 큰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수고스럽게도 찾아가 동의를 해주신 많은 분들께 고개를 깊이 숙여 마음을 전한다"며 "'시무 7조'를 쓰며 꼭 써넣고 싶었던 문장이 있다"면서 "오천만의 백성은 곧 오천만의 세상과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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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은산이 지난 12일 작성한 '시무 7조' 청원 글은 1일 오전 11시 기준 41만0,397명이 공감을 표했다. 당초 이 글은 청원 게시판에 노출되지 않아 청와대가 일부러 숨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청와대는 27일 오후 검토 끝에 해당 글을 공개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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