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가을귀]한 번 뿐인 인생, 무얼 사러 갈겁니까?
브랜드 전문가 최장순 저서 '의미의 발견'
소비자 대다수는 제품의 실제 가치에 적합한 가격을 알지 못한다. 인터넷 리뷰 등으로 제품에 대해 분석해도 합리적인 소비자로서 그 유용성을 명확히 계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세탁기를 구매하면서 성능에 대해 합리적으로 테스트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남들이 분석한 성능 데이터를 꼼꼼히 따져가며 사는 소비자 또한 드물다.
과거에는 기업이 제시하는 실험 결과와 광고 이미지를 믿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지금은 기업이 생산한 데이터보다 소비자들이 직접 생산한 데이터가 구매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믿음의 원천이 기업에서 소비자로 이동한 셈. 그러나 구매 결정에서 남들이 만든 데이터에 의존한다는 사실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소비자는 결국 다른 사람이 만든 데이터 속에서 취할 만한 의미를 찾는다. '스마트한 소비자'는 가성비를 꼼꼼하게 따지고, '세련된 소비자'는 가격이 조금 더 비싸도 디자인을 눈여겨본다. '윤리적 소비자'나 '개념 소비자'는 조직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열심히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을 더 높이 평가한다. 동기가 무엇이든 구매해도 괜찮다는 믿음이 있어야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이다.
이를 두고 세계적인 마케팅 전문가 시드니 J. 레비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는 건 유용성뿐 아니라 의미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브랜드 전문가 최장순이 쓴 '의미의 발견'은 '의미를 사는 소비자'에게 주목한다. 그는 현업에서 브랜드와 인문학의 접목을 시도해왔다. 이 경험으로 브랜드에 부여된 의미를 개발ㆍ발견하는 사고 습관을 논한다. 우리 공동체의 맥락을 살펴보며 새로운 관점으로 의미를 개발하는 사고 습관을 제안한다.
"소비자는 단지 제품의 기능이나 유용성만으로 구매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로 해석되지 않으면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는다. 브랜드의 효용도 중요하지만, 브랜드의 의미는 더욱 중요하다."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브랜드의 의미를 차별적으로 기획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까다로운 질문에 저자가 내놓는 답변은 단순하다. "똑같은 제품이라도 이름을 달리하면 차별화가 된다." 그렇게 따지면 포장 디자인을 바꾸는 것조차 차별화가 된다. 근본적인 기능을 달리하지 않아도 차별화할 요소가 여기저기 널린 셈이다.
차별적 가치가 무조건 판매로 직결되는 건 아니다. 어설프게 차별화할 바에야 기본 가치에 충실한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타사 제품에 없는 특수 버튼과 음성 지원 기능까지 장착된 리모콘이라도 버튼이 잘 눌리지 않으면 잘 팔릴 리 만무하다. 화려한 외모ㆍ스펙으로 차별화한 사람이라도 기본적인 인간미가 없다면 매력적이지 않은 것과 같다.
저자는 강조한다. "차별화만큼 중요한 건 기본 가치다. 그걸 충족해야 정상적인 상품이 될 수 있다. 업에서 필요한 기존 가치에 차별화 요소가 더해질 때 비로소 브랜드가 태어난다."
그는 이를 '카테고리 + 알파(차별화 요소) = 브랜드 의미'로 공식화하며 세 가지 예를 든다. '안전한 자동차'로 인식되는 볼보, '프로포즈 반지'로 부각된 티파니, 이야기 있는 장난감으로 거듭난 레고가 바로 그것이다. 자동차, 반지, 장난감이라는 카테고리가 각각 '안전', '청혼', '이야기'라는 알파와 합쳐져 새로운 의미를 확보했다고 분석한다.
"아이들에게 레고는 단지 완성을 위해 조립해야 하는 시간 때우기 아이템이 아니다.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위한 최적의 교보재다.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만들며 노는 아이들에게 쉽게 부수고 새로운 모습을 만들 수 있는 레고야말로 훌륭한 스토리 도구다. 이 경우 레고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이야기'와 연관돼 있으며, '만들 수 있는 것'보다 '쉽게 부술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한 속성이 된다."
브랜드의 의미 생산을 위한 알파는 주로 소비자의 니즈, 자사의 특징, 경쟁적 차별화 등에 대한 검토로 도출된다. 자기다운 것일수록 경쟁적 차별화를 도모하기가 용이해진다. 반대로 남들이 쉽게 모방할 수 있는 알파라면 자기다움을 확보하기가 어렵고 본질적 차별화를 꾀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알파가 기존 시장을 교란하고 무너뜨리는 '파괴적 혁신'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때론 튀거나 차별적으로 보이지 않아도 소비자에게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되면 자기만의 알파로 부상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저자가 언급한 볼보를 들 수 있다.
알파로 선택했던 '안전'이라는 알파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혁신적 코드가 아니었다. 하지만 볼보는 안전의 의미를 자기답게 강화했다. 최초의 3점식 안전벨트 제작 등으로 ‘안전’이라는 키워드를 볼보의 것으로 만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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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볼보의 한 포스터 광고 카피는 'Volvo, because you only live once'였다. 한 번 사는 인생이니 목숨 귀한 줄 알고 안전한 차를 타라는 의미다. 요즘 세대는 정반대로 사용하고 있다. 'You only live once.' 줄여서 YOLO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마음껏 즐기라는 뜻이다. 남보다는 자신, 미래보다는 현재의 행복을 중시한다. 뭐 어떤가! 의미는 언제나 미끄러지며, 세대는 늘 달라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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