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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이야기] 조세조약의 붕정만리(鵬程萬里)와 다자협약의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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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흠 김앤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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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전 세계적 협력으로 K방역이 주목받는 요즘, 국제 조세 영역에서는 다자협약에 관한 논의가 뜨겁다. 우리 정부는 2017년 6월 세원잠식 및 소득이전(BEPSㆍBase Erosion&Profit Shifting) 방지 다자협약에 서명했고 지난해 12월 국회의 비준ㆍ동의를 마쳤다. 올해 5월 그 비준서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기탁했다. 그간 OECD는 다국적 기업의 국제적 조세 회피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15개의 BEPS 프로젝트 실행계획을 준비했다. 그중 실행계획 2~15는 이행 단계로 들어섰고 올해 말까지는 디지털 경제에 대한 실행계획 1이 확정될 전망이다. BEPS 방지 다자협약은 조세 조약과 관련된 실행계획을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기존의 양자조약 개정 대신 다자 간 협정 체계로 도입된 것이다. 연말 실행계획 1의 수립에 따른 전통적 국제 조세 규범의 수정도 큰 전환이지만 다자 간 협정 체계의 출범은 조세 조약 100년 여정의 중대한 절차적 변화다. 오는 9월 다자협약이 발효되면 협약 가입국 간의 조세 조약에 대해서는 별도의 협상 없이 최소 기준의 BEPS 대응 방안이 자동으로 반영된다.


BEPS 방지 다자협약은 ①기본적인 BEPS 이행 조항 ②이행 조항과 대상 협정 조항의 관계를 규정한 양립성 조항 ③유보의 허용 범위를 규정한 유보 조항 ④대상 협정 조항이 변경되는 경우 이를 통지하는 통보 조항으로 구성됐다. BEPS 대응 방안의 최소 기준을 반영하면서도 그 외에는 자유롭게 유보를 허용하는 등 유연성을 고려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주요 골자는 조세 조약 혜택의 제한과 분쟁 해결 절차의 개선으로, BEPS 프로젝트 참여국으로서 이행 의무가 있는 최소 기준들이기도 하다. BEPS 방지 다자협약에 따라 조세 조약의 제한세율 등의 혜택을 주목적으로 하는 거래에 대해서는 그 혜택이 부인돼 조세 조약 남용 사례의 방지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조세 조약에 배치되는 과세 처분에 대해 납세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대상을 종전의 거주지국 과세 당국에서 조세 조약의 양 당사국인 거주지국과 원천지국 중에서 선택할 수 있게 함으로써 납세자의 권익 제고도 기대된다.

국제 조세 규범은 지난 세기 조세 조약으로 출발해 작금의 다자협약에 이르렀다. 국제연맹은 제1차 세계대전 후 국제 무역과 투자의 활성화를 위해 조세 조약을 활용하고자 1923년 에드윈 셀리그먼 등 4명의 저명한 경제학자에게 이중과세에 관한 보고서 작성을 의뢰했다. 그 보고서의 핵심은 상호 합의한 범위로 원천지국의 과세권을 낮추고 그 대신 거주지국은 원천지국의 과세권을 우선해 이중과세를 조정하는 것으로, 국제 조세 규범의 효시가 됐다. 이후 1928년 국제연맹의 이중과세방지협약안이 나오고 몇 차례 수정을 거쳐 1943년 원천지국 과세를 강조하는 멕시코 모델이, 1946년에는 거주지국 과세 입장의 런던 모델이 각각 구상됐다. 하지만 다자 간 조세 조약의 제안에는 실패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맹을 계수한 유엔(UN)에서는 재무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미국이 이중과세방지협정의 비준을 포기함에 따라 무위에 그쳤다. OECD의 전신인 유럽경제협력기구(OEEC)에서는 4차례의 중간보고서가 작성되기도 했다. 이후 미국과 캐나다의 합류로 진용을 갖춘 OECD는 1963년 최초로 모델 조세 조약을 작성하고 2017년까지 10번 이상의 개정 작업을 했다. 한편 UN은 1980년 별도의 모델 조약을 제정해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 원천지국 과세권을 강화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세계 국가의 약 80%가 OECD 모델을, 나머지 20% 정도가 UN 모델을 채택했다. 반면 미국은 독특한 유보 조항 등을 담은 독자적인 US 모델 조약을 마련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모델 조약의 존재는 국제 조세에 관한 국가별 이해관계의 조정이 그만큼 어렵고 조세 조약의 역사가 원천지국과 거주지국 간 과세권 배분의 지난한 역정이라는 반증이다.


국제 조세 분야는 이해관계가 다양한 변화무쌍한 플레이어들의 각축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통적 국제 조세 규범인 고정사업장세제 등에 대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공동 전선을 구축해왔지만 디지털 경제하에서는 균열이 발생했다. 미국 다국적 기업에 대한 EU의 디지털 서비스세 도입이 단적인 예다. BEPS 대응 다자협약에 있어서도 큰 틀의 대략적 합의는 이뤄냈지만 각론에서는 여전히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BEPS 프로젝트의 논의에는 참여하되 그 결론을 지지하거나 수용하지는 않았다. 자국 다국적 기업에 대한 과세 논의가 달가울 리 없었을 것이다. 반면 EU는 처음부터 BEPS 논의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2016년에는 EU 조세회피방지지침을 채택해 회원국들이 이를 국내법으로 수용하도록 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27개 EU 회원국이 다자협약에도 서명했다. 일본은 우리나라가 유보한 중재 조항 등까지 수용해 우리나라보다 적극적으로 다자협약에 참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BRICS(브라질ㆍ러시아ㆍ인도ㆍ중국ㆍ남아프리카공화국)로 대표되는 주요 신흥국가모임에서는 브라질을 제외한 중국, 러시아, 인도가 다자협약을 비준했다. '조세피난처'라고 불리는 리히텐슈타인, 모리셔스, 모나코 등이 다자협약에 서명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 통상 체제가 도하협상 이후 진전이 없자 자유무역협정(FTA) 체제가 출현해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는 다자주의에서 양자주의로 이행된다고 평가되는데, OECD를 중심으로 한 국제 조세 질서는 그와는 정반대로 다자주의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 조세 정보 교환과 조세 행정 공조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다자간조세행정공조협약이 그 시발점이다. 그러나 실체법에 관한 다자협약은 그 자체로 어떤 완결적인 법적 문서가 아니며 기존의 양자조약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다자협약에 의한 일괄적인 변경과 개별 양자조약 개정 작업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또한 다자협약에 의해 변경된 조세 조약과 국내 세법 간의 충돌에 대한 각별한 주의도 긴요하다. 이뿐만 아니라 향후에 논의될 디지털 경제에 관한 새로운 과세 방안이나 우리나라가 채택하지 않은 다자협약의 조항들에 대해서도 장기적ㆍ전략적인 안목에서 깊이 있는 세부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1970~1980년대에 체결된 선진국들과의 조세 조약이나 1990년대 이후 체결된 개발도상국들과의 조세 조약 모두 그간 급격히 변화된 우리나라의 경제 현실에 맞지 않는 조항이 많고, 다자협약 비준만으로 보완하기에는 역부족인 경우도 있다. 이번 다자협약의 발효를 발판 삼아 한층 업그레이드된 조세 조약 정책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를 기대해본다.

백제흠 김앤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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