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102동 304호 정원이의 스케줄을 모른다


동무가 와서, 정원아정원아 소리쳐 부르면

베란다에서 목을 길게 빼고,

“나, 오늘은 유치원 갔다가

외할머니네 가야 돼.

네 시쯤 올 거야, 그때 보자”


날마다 같은 시간에

온 동네가 알아들을 만큼 큰 목소리로

친구의 스케줄을 묻고

쟁, 쟁, 쟁…… 제 동선(動線)을 알리던

어린 동무들의 대화가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못내 궁금하다, 정원이와 친구의 행방이,

벌써 그립다, 막 내린 연속극 주인공들처럼


귓속을 환히 밝히던 실로폰 소리

정원아정원아

아침 햇살이 반듯이 펴질 때면

친구가 되어 외쳐 보고 싶은

정원아정원아


순례자들을 위해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는

바티칸의 교황처럼

시간 맞춰 나타나던 정원이와

정원이 친구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정원이의 스케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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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정원이의 스케줄/윤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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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률아아 노올자, 동성아아 노올자……. 학교 끝나면 동네마다 골목마다 쟁쟁 울리던 깨복쟁이들 친구 부르던 소리. 둘이 모이면 딱지치기하고, 셋이 모이면 구슬치기하고, 넷이 모이고 다섯이 모이고 더더더더 모이면 다방구도 하고 고무줄놀이도 하고 말뚝박기도 하고 쫀드기도 나눠 먹고 아폴로 쭐쭐 빨면서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꽃찾기놀이도 하고 나비 보면 나비 쫓아가고 소독차 보면 소독차 따라 딴 동네까지 우르르 달려가고 그러다 해 지면 엄마 부르는 소리에 다들 헤어지면서 아쉬워서 자꾸 뒤돌아보면서 다짐하고 다짐하던 약속. 친구야아, 내일도 노올자아! 내일도, 꼬옥!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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