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미국 켄자스의 캠프 펀스톤 육군부대 내 임시 병원 모습. 당시 스페인독감으로 전세계에서 500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이미지출처= 미국 국립의료박물관 홈페이지/https://www.medicalmuseum.mil]

1918년 미국 켄자스의 캠프 펀스톤 육군부대 내 임시 병원 모습. 당시 스페인독감으로 전세계에서 500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이미지출처= 미국 국립의료박물관 홈페이지/https://www.medicalmuseum.m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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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현재까지 세계사에서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혔던 전염병은 1918년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국 병사들에게 시작돼 전 세계로 퍼졌던 스페인 독감이다. 당시 일제치하였던 조선에서는 발병한 해인 1918년이 무오년이었던 이유로 '무오년 독감'이라 불렸다. 이 병은 그 당시 세계 인구 16억명 중 5억명 이상이 감염돼 5000만명 이상이 사망했던 무서운 대재앙이었다.


당시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조선에서 무오년 독감 감염자는 742만명으로 전체 인구 1678만명의 절반가량이 걸렸다. 감염자 중 사망자는 14만명에 이르렀다. 조선에 넘어와 살던 일본인도 34만명 중 15만명이 감염됐고, 이 중 1300여명이 숨졌다.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까지 대량으로 사망하면서 조선총독부는 제대로 된 방역대책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조선총독부는 무오년 독감이 전국으로 퍼질 때까지 제대로 된 대책 없이 방관했다. 당시 조선총독은 2대 총독인 하세가와 요시미치란 인물이었는데, 정치에 문외한인 군인 출신이었다. 1916년 부임 당시에 본인도 정치 문외한이라 능력이 없어 안 가겠다는 것을 전임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총리가 되면서 억지로 떠넘겨 맡은 자리였다. 자신과 라인이 다른 군벌이 요직인 조선총독을 해서는 안 된다는 데라우치 총리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낙하산 인사였다.


정치와 관료생활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하세가와가 조선총독이 되면서 조선총독부의 기강은 엉망이 됐다. 총독부를 완전히 장악했던 전임자 데라우치 때와 비교해 분위기가 느슨해졌고, 총독부에 뇌물이 횡행했다. 얼마나 뇌물문제가 심각했으면 일본 헌병대의 정보 조사비까지 횡령돼 식민통치 정보력에 구멍이 생겼다. 조선총독부의 파행운영으로 국내 독립운동단체들은 활발히 활동할 기회를 얻게 됐다. 이 상황에 무오년 독감으로 상당수 공무원들까지 사망하면서 일제의 통치력은 더욱 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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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1919년 거국적 3ㆍ1운동이 발발했을 때도 하세가와는 수수방관으로 일관했다. 이후 3ㆍ1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졌다는 보고를 받고 병력을 파견해 무력진압만 앞세웠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하세가와가 오히려 사태를 더욱 키웠다는 비판이 일게 됐다. 그는 일본으로 소환돼 청문회에서 지탄을 받은 뒤 사임했고, 그를 앉혔던 데라우치 총리 역시 경제파탄으로 인기를 잃은 데다 조선에서의 방역대책과 통치실패 문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파벌싸움에 무리하게 시행한 낙하산 인사 하나가 정권의 몰락을 앞당긴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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