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벌이 여러 나라에 걸쳐 재산을 갖고 있다가 사망할 경우 상속세를 어떻게 매길 것인가. 상당히 복잡한 문제다. 세법은 물론 상속법과 친족법 등이 국가마다 같지 않기 때문이다. 상속재산이 중혼이나 사실혼을 인정하는 나라에 있으면 이들에 대한 상속권을 부인하는 우리나라와는 기본적으로 상속세 계산법이 다르다.
또한 과세 관청이 재벌의 국외 재산을 모두 파악할 수도 없다. 최근 모 항공회사의 창업주가 스위스은행의 비밀 계좌에 넣어둔 수백억 원 상당의 금전 존재 여부를 상속인들조차 상당 기간 몰랐다고 주장한다(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정이 이러니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파라다이스 페이퍼스(paradise papers)'처럼 조세피난처에 숨겨진 자료를 찾아내든지, 아니면 내부자들의 고발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발견하기도 어렵다.
상속세는 사전에 장기적인 '절세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과세 관청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재벌 회장 등은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머리 좋은 변호사나 회계사 등 조력인들을 이용해 온갖 꾀를 짜낸다. 그들은 죽음의 시기만을 결정할 수 없을 뿐(연명치료 등으로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나머지 상속세 신고 내용은 인위적이고 작위적일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일부 나라는 상속세가 없다. 우리나라 재산을 그곳으로 몰래 옮겨놓고 죽음의 장소까지도 그곳으로 정한다면 정작 한국 과세 관청은 한 푼도 상속세를 거둘 수 없다.
역외탈세를 막기 위한 적극적인 제도도 찾아보기 어렵다. 해외금융계좌신고제도가 있긴 하지만 신고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나중에 발각되면 과태료만 부담하면 된다. 프랑스는 신고하지 않은 외국 금융 계좌의 존재 자체가 탈세라고 보지만, 우리나라 대법원은 반드시 탈세라고 보지도 않는다(2014도12619). 너무 나이브하다.
그러나 상속세는 재벌과 그들을 감싸고 있는 조력인들의 의도대로 운용해서는 안 된다. 상속세의 존재가 지니는 함의(含意)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보다 경제적으로 성공할 기회를 더 많이 얻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는 공정과 공평한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나라 헌법 정신과도 맞지 않는다. 상속세는 젊은이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평등한 출발점'에서 사회로 진출하게 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사실 우리나라 재벌 중 차명 계좌나 스위스 비밀 계좌 및 조세피난처 페이퍼 컴퍼니에서 자유로운 자가 몇이나 있겠나.
그렇다고 재벌에 대해 마구잡이 분풀이 식으로 상속세를 운영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합법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82년 '상속세 모델 조세 조약'을 마련했고 이에 터 잡아 미국 등 몇몇 나라는 조약을 체결해 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경제 관련성이 높은 미국이나 일본 및 중국 등과 상속세 조세 조약을 체결해 이중과세를 방지하고, 아울러 조세 조약의 힘을 빌려 이들 나라 어느 곳에 꼭꼭 숨어 있는 상속재산을 찾아야 한다. 또한 세법을 개정해 조세 회피 목적하에 이뤄진 해외 금융 계좌나 해외 재산의 은폐, 명의 위장 행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조세 채권 침해 수단으로 인정해 세금 추징은 물론 형벌을 부과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사족이지만 과세 관청도 실력을 더 키워야 한다. 세법뿐만 아니라 외국어와 국제 상속 법률을 규정하고 있는 국제사법(國際私法) 등에 능통한 전문가가 필요하다.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패대어 울리는 꽹과리만으로 해결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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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남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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