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소 전 서울시의회 사무처장, 신인문학상 당선 수필가 등단
권혁소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영남문학 주최 신인문학상 수필부문(제목 못난 남편, 현명한 아내) 당선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 권혁소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전 서울시의회사무처장)이 종합문예지(영남문학)가 주최한 신인문학상 수필부문에 당선돼 문단에 등단하게 됐다(제목: 못난 남편, 현명한 아내).
유학생활 중 겪은 자녀 교육 애환과 부부애를 다룬 작품으로 심사위원들로부터 ‘실제체험을 소박하면서도 정감 있게 기술, 마음에 와 닿는 글’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권 이사장은 “퇴직 후 그간의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의 기회를 갖기 위해 지나온 날들에 대한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쓴 글이 신인문학상에 당선돼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면서 "뒤늦게 시작한 글쓰기이긴 하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꾸밈없이 좋은 글로써 많은 분들과 서로 교감을 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비쳤다.
또 “퇴직하면서 적어 놓은 버킷 리스트에는 전혀 없었던 수필과 새로운 인연을 소중하게 이어가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권 이사장은 서울시에서 30년 동안 근무하면서 서울시의회 사무처장(1급)과 문화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후 2014년 명예퇴직, 2015년부터 현재까지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4년7월 서울시 퇴직 시에는 ‘애별리고’라는 한편의 시 같은 퇴임사를 남겨(아시아경제 2014년7월28일 보도) 서울시 직원들에게 한동안 회자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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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선 작>
못난 남편, 현명한 아내
“따르릉~따르릉.” 거실에 놓여 있는 유선전화기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아들 녀석의 담임 여선생이었다. 겨우 알아들은 내용은 “당신의 아들이 학교에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여 교장선생님과 면담이 있으니 부모 중 한 명이 학교로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소속된 기관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2년간의 유학생활을 위해 미국으로 오게 되었고 나를 따라 가족이 함께 미국에 온지 8개월 쯤 지나고 있었다. 아들은 주로 유학생 자녀들이 다니는 인근 초등학교 3학년으로 편입을 해서 다니고 있었다. 이 학교의 학생들은 현지 미국인의 자녀들이 약 30%, 나머지 70%는 세계 50여 개국에서 온 유학생 자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들은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한 번도 영어를 접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학교 수업과 현지 생활 적응 과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해 초기에는 한국에 돌아가자고 수시로 울기 일쑤였다. 그러나 6개월쯤 경과했을 때부터는 현지 백인 학생들과의 갈등과 싸움이 잦아졌다. 그 전까지만 해도 영어를 잘 하지 못해 기죽어 지냈으나 어느 정도 영어를 하고 부터는 자기보다 나을 것이 없는 애들한테 괜히 기죽어 지내거나 심부름 등을 했던 것이 억울해서 그런 것 같았다.
교장과의 면담이 가까워지자 아내와 나는 서로에게 학교에 갈 것을 요구하면서 가벼운 신경전을 벌였고, 결국은 함께 가기로 합의를 했다. 미국에서의 생활 중에 가장 큰 두려움과 불편함은 상대방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교장과의 면담에 가기를 싫어 한 것도 의사소통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아들의 잘못에 대해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특별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죄송합니다(I am sorry).’라고만 말하고 교장의 훈계를 듣고 올 생각이었다. 면담 당일 아내와 나는 아무런 사전 논의도 없이 학교에 가서 담임선생의 안내에 따라 교장실로 들어갔다.
미국인 교장은 담임선생으로부터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별도의 인사나 절차도 없이 근엄한 태도로 우리 아들의 말과 행동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면서 도저히 용서하기 어렵다는 투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우리를 무시하는 듯한 교장의 말투와 태도가 못마땅하고 신경을 거슬리게는 했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는 몸 둘 바를 몰라 하면서 아내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죄송합니다(I am sorry).’만으로 끝날 것 같지 않은 분위기인데 딱히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교장이 말한 아들의 잘못은, 최근 들어 우리 아들이 친구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fuck, shit 등이 포함된 비속어를 여러 차례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이런 욕을 하는 것을 가장 금기시하고 있고 엄하게 다루고 있으며, 이런 일이 재발할 경우에는 학교에서 퇴학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교장은 거의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였다. 그러자 듣고 있던 아내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씀을 다하셨습니까?”라고 말한 후, 교장이 더 이상 말이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천천히 또박 또박 서투른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먼저 교장 선생님께서 저희들에게 사과하셔야겠습니다.” 교장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아내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아내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우리 아들은 미국에 올 때 영어는 한마디도 못했습니다.” “지금 여기서 쓰는 영어는 오로지 이곳에서 배웠습니다.” “교장 선생님, 당신께서 우리 아들에게 그런 영어를 가르쳤습니까.” “그렇지는 않겠지요, 아마 여기 미국아이들에게 배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희들은 우리 아들이 사용했다는 그런 단어를 알지도 못합니다.”
교장과 담임선생의 얼굴빛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계속해서 아내의 조용한 말투가 이어졌다. “초등학생의 나이 때는 언어이든 몸짓이든 새로운 것은 무조건 따라 하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운데 손가락은 욕이 아닙니다. 물건을 가리킬 때나 글자를 설명할 때 흔히 가운데 손가락을 사용합니다. 아들이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는 것이 상대에게 하는 욕이라는 것도 여기서 배운 겁니다. 저도 앞으로 우리 아이가 그런 욕이나 손가락질을 하지 않도록 할 테니, 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께서도 아이들에게 각별히 교육을 시켜 주십시오.”
교장의 말투가 갑자기 달라지면서 온화해지기 시작했다. 면담 초기에 지었던 근엄한 표정이나 무시하는 듯한 태도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교장은 멋쩍은 듯이 담임선생을 한번 쳐다보더니 조용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천천히 말을 하였다. 지금까지는 약간은 격앙된 톤으로 화가 난 듯이 빠르게 얘기를 하여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발음도 정확하게 또박또박 얘기를 해서 쉽게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우리학교는 55개국에서 온 세계 각국 유학생들의 자녀들이 다니고 있어서 특별히 학생들의 언어와 태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어머님의 말씀과 같이 저희들도 각별히 노력하겠습니다. 아들에게도 앞으로는 그런 말과 행동을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잘 알겠습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라는 아내의 말을 끝으로 상황이 종료되었다. 통쾌한 하루였다. 그러나 부끄러운 하루였기도 했다. 교장의 다그침에 위축되어 한마디 말도 못하고 눈치만 살피면서 조금은 비굴한 듯한 태도를 보였던 내 자신이 한없이 미웠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내가 존경스러웠다. 평소 조용하면서도 영어에 자신이 없어하던 아내가 어떻게 그런 생각과 용기를 가지고 전혀 기죽지 않고 조리 있게 말을 할 수 있었는지 부럽기도 하고 경외심까지 들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 아내와 같이 걸어오지를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몇 발자국 뒤에서 터덜터덜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 아내가 뒤돌아보면서 풀이 죽어 있는 나를 위로하듯이 말을 건넸다. “당신이 옆에 있으니까 마음이 든든해서 할 말 다했어요. 오랜만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외식이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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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남편에 어울리지 않는 현명한 아내라는 생각을 하면서,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이라 쑥스럽긴 했지만 살며시 다가가서 살포시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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