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늘 희망적 예상들이 넘쳐나게 마련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적 진보는 기대할 만한 미래와 늘 단짝을 이뤄왔다. 자율주행차는 직접 운전할 필요가 없이 편안한 휴식이나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준다고 광고한다. 사람 수준으로 발전한 인공지능(AI)은 귀찮고, 짜증나는 잡일에서 해방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기대감을 심어준다. 마치 우리가 시간이 부족한 이유가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해서 그랬다는 듯이 말이다.
정말 그럴까. 기술의 발전사를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우리가 과로사나 '번아웃 증후군(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ㆍ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과 같이 극도로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현상은 기술 진보가 급격하게 일어나던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나타난 현상이다. 시간을 아껴주고, 효율적으로 관리해주는 첨단 기술과 비법들이 넘쳐날수록 사람들은 시간이 더 부족하게만 느끼는 역설이 나타난다. 컴퓨터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칼퇴근은 점점 더 멀어지고, 가전제품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집안 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일수록 '빨리빨리' '급하다'는 말을 달고산다.
이런 현상을 부르는 용어가 '시간 기근(time famine)'이다. 도대체 시간을 아껴준다는 기술들이 넘쳐나는데 현대인들의 시간은 왜 점점 궁핍해져만 가는 것일까. 두 가지 분석이 있다. 첫째, 시간을 줄여준다는 기술들이 사실은 우리의 시간을 앗아가는 주범이라는 설명이다. 시간을 아껴준다는 기술들은 공짜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자율주행차의 예를 들어보자. 무엇이든 성능이 좋을수록 값도 비싼 법이다. 그리고 처음에 나온 제품일수록 더 비싸다. 우리는 이런 기술들을 구매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도 지쳐 쓰러지기 직전인데 일을 더 해야 한다. 어떻게든 그 차를 구하면 사용한 시간을 벌충하고도 남는 여유를 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비싼 제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또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로 만들어진 여유시간을 품위있게 쓸 여유는커녕 아침 기상을 1시간 더 빨리해서 자율주행차 속에서 부족한 잠을 청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두 번째는 심리적 리듬이 빨라지면서 여유를 즐기기보다는 참지 못할 따분함을 느끼는 데 이유가 있다. PC가 처음 나왔을 때 커피 한 잔을 마시고도 부팅이 진행 중인 경우가 허다했다. 요즘은 마우스를 눌렀는데 바로 접속이 되지 않으면 밀려오는 답답함으로 뒤로가기를 가차없이 누른다. 그 짧은 시간조차도 너그럽게 봐주지 못하는 조급함이 생긴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듣는 대중가요도 전주가 사라지고, 바로 클라이맥스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아마 이 때쯤부터 아이들의 선행학습도 격렬해지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결국 시간을 절약해주는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의 마음이 조급해지면 아무 소용 없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기능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삶의 맥락과 리듬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봐야 한다. 고급기술이란 삶의 과정에서 더 많은 일을 더 빠르게 해주는 기술이 아니다. 삶의 맥락에서 사랑과 우정, 신의, 경외감 같은 중요한 덕목을 충분히 경험하게 해주는 그런 기술이어야 한다. 높은 삶의 질은 충분한 시간과 여유가 필수적이다. 수천 년간 인류를 괴롭히던 식량기근을 농업기술로 해결했듯이, 시간기근도 인류의 지혜로 충분히 해결 가능하리라 믿는다. 4차 산업혁명이 인류를 위한 진정한 혁명이 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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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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