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식사 시간/오영미
가족은 언제나 함께 식사를 해야 하는 법이야 나를 억지로 식탁에 앉히며 아빠가 미소 지었다
아빠, 나는 하나도 배가 고프지 않은데요, 라고 말하려는데 목구멍을 막고 있던 코르크 마개가 뻥, 소리를 내며 검고 매끄러운 머리칼을 쏟아 냈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뻣뻣하게 다림질된 여자가 내 목구멍을 벌렸다 여자는 아빠에게 잘해 드려야 해요! 라는 문장과 함께 검고 풍성한 머리칼을 내 목구멍에 욱여넣고는 코르크 마개로 단단하게 봉해 버렸다
알았어요 열심히 먹을게요! 소리치자 봄날의 곰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의 아빠, 내 손에 수저를 꼭 쥐여 주며 말한다 잡곡밥과 오징어무침은 너에게 이롭단다, 꼭꼭 씹어 먹으렴
서울로 가겠다는 나를, 아빠는 방울뱀이 벗어 놓은 허물처럼 쳐다보았다 서울로 가면 너의 목구멍은 너덜너덜해질 텐데?
아빠의 목소리는 어느덧 여자의 목소리로 바뀌어 있고, 아빠에게 잘해 드려야 해요! 라는 문장이 목구멍을 찌르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온몸에 독이 오를 것만 같아, 알았어요 가지 않을게요! 고래고래 소리치자 그래야 내 딸이지 아빠는 한 권의 너덜너덜한 동화책으로 돌아와 있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텀블러에 담아 입 대고 마셨는데…24시간 지난 후...
■ 이 시는 나긋나긋하지 않다. 나긋하기는커녕 상당히 화가 나 있는 듯하다. 이 시는 예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그러기보다는 하고 싶은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이 시는 결코 위안을 주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다. 이 시는 오히려 비아냥거리고 폭로하고 소리친다. 그래서 이 시는 시라기엔 왠지 거북하고 불편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시라면 으레 보드랍고 아름답고 따뜻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마치 여성이라면 딸이라면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함부로 생각하듯이 말이다. 채상우 시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