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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한국호, 어디로 가고 있는가

최종수정 2020.01.02 11:59 기사입력 2020.01.0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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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한국호,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20 경자년(庚子年)이 밝았다. 2019년은 3ㆍ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어서 그런지 민족주의 열풍이 한반도 주변을 강타했다. 북한이 자체 핵무장을 완성하는 단계로 진입하면서 한반도와 한민족의 자주화를 위한 기초가 수립됐다고 자체평가 했을 것이다. 레이와(令和)시대를 개막한 일본은 역대 최장수 총리의 반열에 든 아베 신조 총리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했다. 중국은 헌법까지 개정하며 시진핑의 영구집권 체제를 갖췄다.


대한민국은 무슨 평가를 내려야 하나. 현 정부 국정 5개년 외교계획을 보면 '국제협력을 주도하는 당당한 국가'가 핵심 목표로 설정돼 있다. 그동안 정부는 동북아플러스책임공동체를 형성하고, 한반도 주변 4강에서 벗어난 자주외교의 길을 가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2019년은 그 본격적 실행의 해였다.


이 세상의 어느 나라가 할 수만 있다면 '당당하고 주도적인' 외교를 마다하겠는가. 문제는 모양새만 당당하고 주도적인 자주외교였지, 자평할 정책성과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과는 과거사 위안부 문제 등 역사문제와 실질 협력 문제와는 분리 대응해 미래지향적 성숙한 협력동반자 관계로 발전하겠다"던 애초 목표는 정반대로 실현됐다. 일본의 통상보복의 원인이 역사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대법원의 판결(강제징용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직접배상)에 대한 대응 보복임을 애써 인정하지 않으니 한일 관계가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할 리가 없다. 실제로 한일 관계를 역사전쟁으로 유도한 건 문재인표 일본 때리기 외교인데 거꾸로 일본에 대해 역사문제와 통상문제를 분리하라는 요구만 해대니 국제적으로 먹힐 리가 없다. 한일 관계는 국교정상화 이후 가장 비성숙하고 과거 지향적 경쟁 관계로 퇴보하고 말았다.


'주도적이고 당당한 협력외교를 통해 북한 비핵화를 추구해 한반도 번영을 달성하겠다'던 목표는 아예 잊혀졌다. 북한 비핵화 정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대북 제재와 협력의 수단을 효과적이고 균형감 있게 사용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유엔(UN) 안보리 제재 완화와 남북경협 재개만 일관되게 요청함으로써 서방국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하고 북한으로부터는 조롱만 당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및 번복을 둘러싼 한미동맹의 균열, 한ㆍ미ㆍ일 3각 협력관계의 사실상 붕괴는 오갈 곳 없는 한국 외교를 자리매김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군용기들이 수차례 우리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는 데 대해 '당당하게' 항의하지도 못하는 사태도 초래됐다.


그렇다고 국민을 통합시켜 국내정책들을 성공시킨 것도 아니다. 물 위에 떠 항해하고 있는 배를 전면 수리할 수는 없는 법인데도 한꺼번에 한국호(韓國號)를 개조하는 무리수를 뒀다. 소득주도성장과 기업지배구조 개혁, 탈(脫)원전, 특목고 폐지, 세금주도 복지, 검찰개혁, 고강도 부동산 정책 등 하나도 제대로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서 전면 개조작업을 강행했다. 구한말에 버금가는 격랑이 일고 있는 바다 한 가운데서 정신 없이 흔들리고 있는 선체 위에 고치려고 빼놓은 멀쩡한 부품들이 스며든 바닷물 속에 잠겨 있는 형국이다.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대하는 승객이나 선원들은 어느새 적폐세력이 돼 바다로 던져질 위협을 느끼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2020년에도 이런 식의 항해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세월호 같은, 한국호의 자체 침몰일지도 모른다는 불만과 공포에 차 있는 반 이상의 승객들을 달랠 길이 없다. 이미 통합과 자정 기능을 상실한 한국호엔 정말로 선장을 바꾸려는 사생결단의 대결만이 운명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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