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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피해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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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피해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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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 모 항공사 임원이 자사 항공기에 탑승했는데 승무원의 기내 서비스가 불만족스럽다는 이유로 질책하는 폭언을 한 사건이다. 그는 메뉴판으로 승무원의 머리도 때렸으며 비행기가 문을 닫고 계류장을 떠난 직후 비행기를 다시 계류장으로 되돌리게 한 다음 해당 승무원을 비행기에서 내리게 한 일도 발생했다. 상관이 지위를 남용해 부하 직원에게 과도한 모욕과 폭행을 한 점이 사회적 공분을 야기한 대표적 '갑질' 사건이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과연 누구일까. 대다수 사람들은 모욕과 폭행을 당한 승무원 개인이 피해자라고 본다. 이런 관점이라면 피해자는 1명뿐이며 가해자에게는 개인적 법익인 인격과 신체를 침해한 범죄를 범하였다고 인정되는 범위에서만 책임을 물으면 된다. 그러나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모든 승객 그리고 승무원의 안전과 편익을 침해한 일도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피해자는 한 개인이 아니라 비행기에 타고 있던 300여명의 집단이다.

항공기 승무원은 기내 서비스 직원인 동시에 항공기 운항 책임자다.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행할 자와 그 직무 범위에 관한 법률(제7조제2항)'에 따라 항공기 내에서는 경찰 업무를 수행하는 '특별사법경찰로서 수사관'이기도 하다. 따라서 항공기 승무원은 항공기 내 형사상 불법 행위자에 대해 체포 등을 할 수 있는 수사권이 있다(실제 항공기 내에는 범인 체포를 위한 수갑 등이 비치돼있다). 따라서 승무원의 지시를 거부하거나 승무원에게 폭행ㆍ협박하는 행위는 항공기 운항 방해 행위로 간주되어 형법이나 항공보안법에 따라 중하게 처벌받게 되는 것이다.


현재 검찰이 대학과 대학원 입학지원 첨부서류 일부가 허위이거나 위조되었을 가능성을 놓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만약 허위 서류가 입학전형에서 중요 채점요소로 작용하여 입학이 허가되었다면 피해자는 누가 될까. 학문상으로 형법상 범죄는 크게 개인적 법익에 대한 죄, 사회적 법익에 대한 죄, 국가적 법익에 대한 죄로 분류된다. 입학 관련 허위 서류를 제출했다면 대학의 공정한 입시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써, 대학 측이 피해자가 된다. 사립학교의 경우는 개인적 법익에 대한 죄 중 신용에 대한 죄, 국립학교의 경우는 국가적 법익에 대한 죄 중 국가의 기능에 대한 죄에 해당할 것이지만 여기서는 실질적인 피해자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입학지원서에 허위 서류를 첨부해 1명이 부정입학하게 됐다면, 피해자는 정당한 서류를 첨부해 응시했다가 탈락한 1명뿐이며 피해 법익은 한 개인의 입학권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혐의자가 허위 서류를 첨부했더라도 불합격한 경우라면 피해자는 1명도 없게 된다. 따라서 입학에 성공하지도 못한 대학들에까지 압수ㆍ수색으로 증거를 수집하려 시도하고, 나아가 관련 서류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은 과잉 수사라는 비난을 받을 소지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피해자는 입학 제도를 신뢰하고 그 제도에 맞춰 준비해온 많은 수험생과 그 제도의 높은 벽에 좌절해 아예 응시할 엄두도 내지 못한 수험생 그리고 제도에 따라 입학하여 졸업한 가치를 신뢰한 많은 사람들이 될 것이다. 이 경우 피해 법익은 제도에 대한 신뢰, 즉 사회적 신용이 되고 피해자는 훨씬 많아지게 된다.


유사한 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예컨대 만원권 지폐 한 장의 위조가 개인적 법익 측면만 본다면 피해자는 위조화폐 1장을 수령한 개인으로서 피해액이 1만원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화폐제도라는 신용이 훼손됨으로 인하여 그 피해액이 수백ㆍ수천억 원이 될 수 있고 피해자는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로서 한 국가의 화폐 유통 질서라는 신용도를 어지럽히는 중대한 범죄가 된다.


임정혁 법무법인 산우 대표변호사ㆍ전 법무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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