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지금 정년연장 말할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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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근로자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종업원 300인 이하 사업장까지 60세 정년을 시행한 게 2017년 1월. 1년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정년 연장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대법원이 지난 2월 육체노동 가동 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늘린 데서 힘을 얻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대법원이 그렇게 판단했으니 정년도 연장하는 게 타당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법 판결은 각종 인명사고에 따른 보상액을 계산하는 기준일 뿐이다. 육체적으로 65세까지 일할 수 있으니 보상액도 65세까지 일했을 경우를 가정해서 계산하라는 것이다.

대법의 판단이 정년 연장의 근거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육체노동 가동 연한은 인명사고를 당한 불운한 몇몇 사람에게만 적용되지만 정년 연장은 대한민국의 모든 직장 근로자에게 적용된다. 그럼에도 정년 연장은 한국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일 수 있다.


인구 동향으로 볼 때 그렇다. 한국에서는 이미 인구 감소가 진행 중이다. 올해를 기준으로 사망자 수보다 출생아 수가 적어지는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된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1명 이하로 떨어졌다. 10년 후인 2029년부터는 총인구수가 줄어드는 인구 축소국으로 전락한다. 상황이 이러니 경제활동인구의 적정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정년 연장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아무리 급해도 일에는 순서가 있다. 주 52시간 근로제 실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더해 세계경제 부진으로 경제가 역성장할 정도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당에 정년 연장을 거론하는 게 시기적으로 타당하냐는 것이다.


이웃 나라 일본도 정년 연장을 검토하고 있으나 한국과는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0월 정년을 65세에서 70세로 연장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일본이 정년을 65세로 연장한 것은 2013년. 5년이 지난 시점에 5년 연장을 다시 추진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타당한 이유가 있다. 일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집권 후 되살아난 일본 경제는 지금 완전고용 시대를 즐기고 있다. 대졸, 고졸 취업률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대졸 취업률은 97%, 고졸 취업률은 98%를 넘는다. 졸업하면 모두 취업한다.


우리는 어떤가? 지난해 대졸 취업률은 66.2%다. 51만명이 졸업했으나(대학원 진학ㆍ해외 이민자 제외) 34만명만 일자리를 잡았다. 고졸 취업률은 더 절망적이다. 50% 수준에 불과하다. 15세에서 29세까지의 청년 50만명이 비자발적 백수 생활에 내몰려 있다. 이러한 사정이 단기간에 개선되리라는 기대도 없다. 기업이 설비투자를 줄이고 제조업 가동률이 떨어지는데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날 리 없다.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정년 연장이라는 말을 꺼낼 용기가 과연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기업에는 비상이 걸렸다. 고용유연성이 매우 낮은 한국에서 정년 연장은 코스트 증가를 의미할 뿐이다.


현 정부의 특징은 '한다면 하는 것'이다. 좌고우면이라는 단어는 사전에 없다. 정부가 말을 꺼냈으니 기업은 정년이 연장될 것이라는 전제로 대응할 것이다. 당장 신규채용 규모를 줄일 것이다. 절대 숫자가 줄지는 모르겠으나 당초 계획보다는 더 적게 뽑지 않을 수 없다. 최대의 피해자는 다시 청년들이다.


정년을 연장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정년을 연장해도 좋은 경제 여건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말이다. 일본처럼 '일자리'가 아닌 '일손'이 부족한 경제라면 누가 반대하겠는가. 정년 연장 논란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 시간 절약해서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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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철 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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