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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밥심, 밥인사, 밥문화

최종수정 2019.03.28 11:40 기사입력 2019.03.2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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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밥심, 밥인사, 밥문화

용문산 깊숙한 마을, 막차가 끊긴 시골길을 십리 남짓 걸어 닿은 동무네 집에선 밤 12시 무렵인데도 할머니ㆍ할아버지가 버선발로 나와 반겨주셨다.


발이 부르트도록 자갈길을 걸었으므로 바로 이부자리를 폈는데, 사랑채 문이 열리며 할머니가 밤참을 차려놓았다고 하신다. 내일 벼베기에 힘깨나 써야 하니 든든히 먹고 자라는 말씀이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고봉밥을 다 비웠다. 다음 날 진종일 허리 한 번 제대로 못 펴고 추수를 도왔는데 아침, 점심, 저녁에다 사이사이 새참까지 다섯 번 밥을 먹었다. 돌도 씹어 먹는다는 스무 살 청춘이기도 했지만, 그 한 번의 경험으로 내 말창고에 '밥심'이라는 관념어는 '생활국어'로 아로새겨졌다. '밥은 식도락이 아니다, 뽀빠이 시금치다!'


잡지기자로 온갖 장소, 화제를 쫓아다니던 시절에 밥때는 불편한 쉼표였다. '당의정처럼 한 알 삼키면, 밥심이 불끈 솟는 그런 약은 없을까?'라고 철 없는 몽상도 했다. 그러다가 소화불량에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한동안 고생하고 나선 밥을 약이라 여겼다. "삼시 세 끼 몸에 맞는 음식, 잘 챙겨 드셔야 합니다!"라는 의사의 말씀을 신탁처럼 받들었다.


요즘은 귤농부로 사는 처지라 다시 밥심에 기대어 산다. 그러다 가끔 도회 나들이를 하면 한창 바쁜 사람들 시간 빼앗기 싫어 차 한 잔 담소로 회포를 풀곤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밥이 빠진 만남에는 맥이 풀렸다. 밥이 밥심만 주는 것이 아니라 정도 떼어주고 마음도 덜어주도록 만드는 '관계의 묘약'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밥이 빠진 관계, 밥 한 끼 나누는 식구(食口)가 아니면 아무래도 '너와 나 사이'가 휑하다. 오래 주거니받거니 말을 섞어도 허례허식인 듯만 싶다.

우리에겐 '겸상'이라는 밥문화가 있다. '두 사람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이 함께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차린 상'이다. 두겸상이면 두 사람이 한 상에 마주앉게 차린 상이고, 세 사람이 한 상에 먹도록 차린 상은 셋겸상이다. 노동을 마친 시간 신발을 쉬게 하고, 맨얼굴과 맨발인 채로 마주앉는 것은 가족끼리 겸상이고, 곡주도 곁들여 친목을 도모하는 겸상자리는 이른바 회식이다.


겸상을 차리는 옛 법도에 '부자지간엔 겸상을 하지 않는다' '반찬 중 더운 음식과 고기, 별찬은 손님이나 윗사람 가까이에 놓는다'고 했으니 우리네 밥문화는 단지 끼니를 때우는 행위가 아니라 배려와 예의를 함께 담아내는 관계의 미학인 셈이다.


세태가 변해 겸상문화 대신 혼밥문화가 대세다. 스마트폰 하나면 지구 반대편과도 소통하는 세상에 밥문화는 왜소와 단절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이다. 혼밥이 '씁쓸한 시대상'이 된 배경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간편식 혼밥으로 밥심을 충전하는 이유가 바쁜 시간과 주머니 사정 때문만이 아니라면, 굳이 고독한 미식가 흉내를 내는 혼밥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밥은 밥심이기도 하면서, 밥 먹는 일은 그야말로 '사람 사는 일이이자 서로 안부를 묻는 인사(人事)'이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겸상문화며 관계의 회복 등등을 떠나 밥 한 끼 함께 하는 일은 정과 마음을 함께 건네며 한 세상 따뜻하게 동행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언제 밥 한 번 먹어요!"는 다들 알다시피 헛인사다.


"오늘 밥 같이 먹어요!" 이런 인사가 유행이었으면 좋겠다.


'혼밥 끊고 겸상합시다!' 이런 현수막이라도 내걸고 싶다.


정희성 시인ㆍ제주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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