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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부장,ㅎ실장…직장상사 연락처에 붙는 기찬 초성들 '이유 있었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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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오성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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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 서울의 한 광고회사에서 근무하는 A씨는 최근 연락처 목록을 정리했다. 직장상사들의 연락처에 알파벳 ‘z’, 한글 초성 ‘ㅎ’를 붙인 것이다. 저장된 연락처 이름은 ‘z 김경운(가명) 부장’, ‘ㅎ 강상호(가명) 실장’ 같은 식이다. A씨는 “이렇게 하면 성이 ‘강’, ‘김’ 등 연락처에 먼저 뜨는 이름이더라도 모바일 메신저의 가장 마지막 목록으로 밀리게 된다”며 “퇴근 후에 친구, 지인들의 카카오톡 업데이트나 연락처를 자주 검색하게 되는데 직장 상사들이 이름이 먼저 뜨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름의 스트레스 관리법이다”라고 말했다.

#. 부산시 사상구의 한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B씨도 직장상사들의 이름 앞에는 숫자나 알파벳을 따로 붙여 저장한다. 특히 업무관계로 주말에 연락이 오기도 하는 민원인들은 알파벳 ‘m’으로 표시해 뒀다. 구분이 편하도록 한 것도 있지만 업무스트레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하는 고육지책이었다. B씨는 “몇몇 이들은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뜨지 않도록 ‘#’까지 붙였다”라며 “업무 관련 단체 대화방이 있지만 상사와는 여전히 카톡 친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스마트 워크’ 시대, 직장인들의 자화상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됐지만 스마트폰과 디지털 장비로 연결된 직장인들의 ‘오피스 패싱(직장 회피)’ 현상은 다양한 형태로 삶에 녹아들고 있다. 업무 관계자들과의 연결을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하는 현상은 사생활의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서 있는 모바일 메신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두드러진다. ‘z 부장’ ‘ㅎ 실장’은 멀리 있지 않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직장 내 스트레스를 퇴근 후 사생활의 영역까지 연장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주당 52시간 근무 실시로 여가 시간이 길어지고 사생활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이같은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7월1일부터 300명 이상 사업장부터 먼저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기업들은 ‘퇴근 후 근무’의 영역이 대폭 늘었다. 직장인 배종호(32) 씨는 “근로시간이 줄어들었다지만 사람을 늘려서 업무를 분담하고 절대 근로시간을 줄인, 조직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대부분 퇴근 후까지도 이어지는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들이 더욱 늘어났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실제 퇴근 후 카톡 스트레스는 여전하다. 구인구직 포털사이트 사람인이 지난해 11월 직장인 456명을 대상으로 ‘모바일 메신저 업무처리 현황’을 설문한 결과, 10명 중 7명(68.2%)꼴로 근무시간 외에 메신저 업무지시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근무시간 외 메신저로 업무연락을 받은 횟수는 주당 평균 8.7회로 나타났다. 한국노동사회연구원이 2016년 직장인 240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0.3%가 ‘퇴근 후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업무를 경험했다’고 답했고, 이에 따른 주당 초과근무 시간도 11.3시간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에서는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을 발의하며 업무와 사생활의 영역을 나누고자 하는 논의를 전개한 바 있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이 법에는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근로시간 외 시간에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업무 지시를 내리는 등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 법은 여전히 계류중이다. 조직 문화 개선이 아닌 법으로 일괄 규제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냐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에 대한 검토보고서에서 “업무시간 외라도 긴급한 연락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업종별로 여건 차이가 크기 때문에 법률로 일괄해 금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지호 경북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직장인들은 평균 5개 이상의 단톡방에 들어가 있다는데 내향적인 사람들에겐 SNS를 통한 피상적인 네트워크는 무척 부담스러울 수 있다”며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에 위안을 얻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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