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작전의 역사와 생존 전략…유발 하라리 '대담한 작전'

[Encounter]대담함으로 쏴라
AD
원본보기 아이콘

1100~1550년 중세시대 특수작전 연구...프랑스와 합스부르크 제국 전쟁 등 소개
독자 위한 생생한 현장 묘사 눈길...영웅적인 묘사 대신 비판적 논의 유도
역사적 시각 통해 현재에 던지는 메시지 "대담한 자가 살아 남는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양우석 감독(48)의 영화 '강철비'에서 대한민국은 비밀스러운 작전으로 전쟁을 피한다. 엄철우(정우성)의 도움으로 북한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리태한 정찰총국장(김갑수)의 위치를 파악한다. 이의성 대통령(김의성)의 폭격 명령에 F-15 전투기는 타우로스 미사일을 발사하고, 평양방어사령부 지하벙커는 그대로 폭발한다.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히브리대학교 교수(41)의 관점에서 이 조치는 특수작전이다. 저서 '대담한 작전'에서 "투입된 자원에 비해 전략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상당한 결과를 이끌어낼 능력이 있는 소규모 부대가 좁은 지역에서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수행하는 전투작전"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작전에는 보편적이지 않고 은밀한 전투 방법이 사용된다. 성공하는 이는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전쟁을 다루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쉽게 발견되는 소재다.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에단 헌트가 대표적이다. 심지어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년)'나 '블랙호크 다운(2001년)'처럼 전쟁의 비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다룬 영화에서도 특수 작전에 중점을 둔다. 전자는 상징적인 이유로 병사 한 명을 구하는, 후자는 적의 핵심 인물을 납치하는 작전이다. 그러고 보면 영국 공수특전단, 미국 그린베레, 러시아 대(對)테러진압부대 오몬(OMON) 같은 진짜 특수부대들이 대중적으로 유례없는 관심을 받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야기 속의 이상적인 남성 영웅이 특수작전 전문가인 만큼, 현실 속의 특수부대가 국가의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자리를 잡았을 수 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70)가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도 여기에 있다. 그에게 표를 준 많은 유권자들이 십중팔구 은막에서 펼쳐진 그의 수많은 임무들을 떠올렸을 테니 말이다.


영화 '강철비' 스틸 컷

영화 '강철비' 스틸 컷

원본보기 아이콘

특수작전을 다루는 작품들의 배경은 대부분 20세기 말이나 21세기 초다. 이따금 미래의 분쟁도 다룬다. 학계의 관심 범위도 다르지 않다. 9ㆍ11 사건과 각종 테러 사건으로 특수작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나, 기껏해야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뿐이다. 예외가 있더라도 18세기 말 이전을 들여다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신화 속의 트로이 목마 이야기를 다룬 '트로이에서 엔테베까지: 고대와 현대의 특수작전' 정도다. 하라리는 1100년부터 1550년 사이에 지상에서 시행된 특수작전을 조사해 이 틈새를 메운다. 이 시기 지상 특수작전의 주요 특징들과 이런 특징들이 만들어진 원인들을 개략적으로 살피고, 소수의 사례들을 선별해 심층적으로 묘사한다. 그는 "나의 목적 중 하나는 지난 세기에 일어난 변화들을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특수작전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전쟁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나의 믿음이다"라고 했다.


특수작전은 독특한 특징들 때문에 전쟁의 현실을 이해하게 하는 렌즈 역할을 한다. 하라리는 이에 주안점을 두고 여섯 작전을 소개한다. 가장 극적인 이야기는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제국의 전쟁이다. 카를 5세의 합스부르크 제국에 두 차례 패한 프랑수아 왕은 1536년 전열을 재정비했다. 과거의 패배를 복수하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궁지에 몰린 오스만 제국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의 군대가 이탈리아로 밀고 들어가 사부아를 휩쓸고 밀라노를 위협하자, 카를 5세는 오스만 제국과 싸우려던 계획을 폐기했다. 프랑수아 왕을 완전히 눌러버리겠다고 다짐하고, 알프스를 넘어 총공세를 펼쳤다. 합스부르크 제국군과 비슷한 규모의 병력을 갖췄으나 전투 실력이 한참 떨어졌던 프랑스 군은 지구전을 택했다. 프로방스의 수도인 엑스 등에서 보급품이 저장된 창고를 모두 파괴했다. 농가의 가축들을 도살하고, 밀밭에 불을 질렀다. 우물 역시 막아버리거나 더러운 것으로 오염시켰다. 과일나무만 남겨놓아 설사병을 유도했다.


베첼리오 티치아노의 '프랑수아 왕'

베첼리오 티치아노의 '프랑수아 왕'

원본보기 아이콘

AD

점령 지역에서 먹을 것을 구하려던 카를 5세는 도리아의 함대에서 보급을 받으려던 계획마저 무산돼 보급품의 양을 크게 줄여야 했다. 그런 그에게 오리올의 방앗간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 제분소에서 나오는 옥수수가루로 약 6000명이 끼니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왕은 부대 전체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오리올 방앗간을 파괴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지휘관들은 물론 용병들까지 작전을 기피했다. 약 25㎞를 행군한 몸으로 벌이는 싸움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설사 수비대를 제압한다고 해도 기진맥진한 상태라서 살아 돌아오기 힘들다고 봤다. 무모한 작전은 이름 없는 보병장교인 블레즈 드 몽뤼크에게 돌아갔다. 그 역시 성공 확률을 희박하게 봤다. 허나 목숨을 잃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공을 세우고 싶어 했다.


하라리는 몽뤼크의 힘겨운 여정을 액션영화처럼 실감나게 전한다. "오리올의 제국군 파수병들은 공격을 대비해 무장을 갖춘 상태였다. 병사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화승총 두 정이 불을 뿜었다. '이제 들어가게. 자네가 원한다면.' 몽뤼크가 타반 영주에게 말했다. 타반 영주가 먼저 들어가고 몽뤼크와 병사 몇 명이 그 뒤를 따랐다. 단 하나의 램프에만 불이 켜져 있는 어둠 속에서 육박전이 벌어졌다." 일반 대중을 위한 생생한 묘사에는 기사도 시대에 특수작전이 수행된 과정과 그 역할에 대한 최초의 연구가 반영돼 있다. 영웅적이고 용감한 기념비적 사례로 보는 시각과 일정한 거리를 두며 비판적인 논의를 유도한다. 현대 대중문화 속의 깔끔하고 멋들어진 이미지와 다소 동떨어져 보일 수 있으나, 한층 넓은 맥락에서 전체적인 그림을 제시한다. 그 안에는 인류의 미래를 물어보는 이들에게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대담한 자가 살아남는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