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이슬람공포]②유럽의 '이슬람포비아'는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유럽 내 무슬림 인구 증가에 대한 공포심리가 커지는 이유는 유럽사회가 역사적으로 안고 있는 '이슬람포비아(Islamophobia)' 때문이다. 이것은 지중해 지역 패권을 두고 중세시대 이후 중동 이슬람국가들과 유럽국가들이 계속 전쟁을 치뤄오면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뿌리뽑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슬람포비아의 역사적 연원을 추적해 올라가면, 711년, 스페인의 서고트왕국이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 군대의 침공에 의해 정복된 이후부터로 추정된다. 스페인을 정복한 이후 이슬람군대는 오늘날 프랑스의 투르, 푸아티에까지 진격했다가 물러났다. 같은시기, 유럽 동부지역에서는 옛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중동과 이집트 일대를 이슬람 군대가 정복하고 이슬람 해군이 그리스 전역을 공격했다.
이후 300여년이 지나서는 유럽에서 십자군이 결성돼 한때 예루살렘 일대를 되찾고, 스페인지역에서는 레콩키스타 운동이 전개되면서 이슬람세력을 몰아내는 등 이슬람 세력이 유럽에서 일부 축출되면서 이슬람포비아가 다소 약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슬람 세력인 오스만 터키제국이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 후, 오늘날의 헝가리와 루마니아, 옛 유고연방 일대, 그리스, 불가리아 등 동유럽 대부분 국가를 정복하면서 이슬람포비아는 다시 커졌다.
동로마제국의 수도이자 유럽의 관문인 콘스탄티노플, 현 이스탄불을 1453년 오스만 터키제국이 함락시킨 이후 동유럽 일대는 5세기에 걸쳐 이슬람 세력과 전쟁을 이어나갔다.(사진=위키피디아)
원본보기 아이콘오늘날에도 동유럽 국가들은 이슬람포비아와 혐오가 매우 큰 지역들에 속한다. 이들은 오스만 터키제국과 15세기부터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500여년에 걸쳐 싸웠기 때문에 이슬람에 대한 감정이 도저히 좋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오스트리아도 수도 빈(Vien)이 1529년과 1683년, 두 차례 터키군의 침공을 받은 바 있다. 오스트리아, 폴란드, 러시아의 17세기 이후 19세기 말까지 역사는 대부분 터키와의 전쟁으로 점철돼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남부 해안지대도 이슬람 해적들이 출몰해 약탈을 자행하고 주민들을 노예로 끌고간 역사가 길기 때문에 역시 상당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나마 이슬람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는 국가들은 대부분 러시아를 제외한 북구권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들과는 오스만 터키제국이 국경을 마주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역사기간 동안의 악감정은 별로 없는 편이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텀블러에 담아 입 대고 마셨는데…24시간 지난 후...
5세기에 걸친 터키의 지배는 특히 옛 유고연방 일대에 아주 큰 이슬람포비아를 남겼으며, 이것은 코소보 내전 당시 인종청소로 나타나기도 했다. 코소보 내전은 지난 1998년, 옛 유고 연방 내에 세르비아가 독립을 주장한 코소보 지역의 알바니아계 민족들을 학살하면서 벌어진 전쟁이다. 코소보는 14세기 세르비아 왕국이 오스만 터키제국에 대항해 최후의 격전을 펼친 곳으로 세르비아인들 입장에서는 민족의 성지였기 때문에 이슬람을 믿는 알바니아계 민족들에게 뺏길 수 없다는 민족감정이 불붙으면서 치열한 전쟁으로 확대됐다.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옛 오스만 터키인들의 후손으로 다수가 이슬람신도였다.
결국 서구의 개입으로 해결됐지만 2차대전 이후 가장 끔찍한 인종청소로 기록될 정도로 수많은 무슬림들이 학살당했다. 유럽연합 창설 당시, 다원주의란 미명하에 가려져있었지만, 유럽의 이슬람포비아는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고 130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