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IB 시대]한투증권만 단기금융업 인가…업계 지각변동, 불안한 출발
미래에셋대우 등 5곳 신청…오늘 금융위서 최종 인가
1990년대 말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국내 대기업들의 줄도산은 한국 경제를 한순간에 몰락시켰다. 기업에 많은 돈을 빌려줬던 은행들도 연쇄 도산했다. 하지만 해외의 투자은행(IB)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들은 돈줄이 막힌 국내 기업들을 찾아가 계열사 매각, 회사채 발행 등을 도와주는 대가로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국내 금융사들은 풍부한 자금과 글로벌 네트워크로 무장한 이들을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한국형 IB를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이유였다.
이제 '한국판 골드만삭스'라고 불리는 한국형 첫 IB가 정부의 육성 계획 발표 후 6년여 만에 시동을 걸게 됐다. '초대형 IB'의 첫 출범을 앞두고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게 됐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수익성 개선이 쉽지 않아 '몸집 불리기'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본격적 초대형 IB 시대를 앞두고 향후 전망과 진정한 한국판 골드만삭스가 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살펴본다.
글 싣는 순서
<상> 초대형 IB 첫 인가, 대형 증권사 재편 신호
<중> 갈 길 먼 한국판 '골드만삭스'
<하> 글로벌 IB의 역할은? '플레이어'별 역량 강화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한국형 '골드만삭스' 육성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초대형 투자은행(IB)'이 첫발을 뗀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 대형 증권사 5곳의 본격적인 시장 진입을 앞두고 증권업계의 기대가 크지만, 단기금융업 인가를 두고 업계 간 갈등이 다시 고조되고 있어 잡음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13일 금융 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날 오후 3시 정례회의를 열고 초대형 IB를 최종 인가할 계획이다. 정례회의에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을 비롯해 최흥식 금융감독원장 등이 참석해 초대형 IB 인가를 포함, 단기금융업 인가 안건 등을 처리한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표된 2011년 7월 이후 약 6년4개월 만이다.
초대형 IB를 신청한 대형 증권사는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5곳이다. 이 5개사에 대한 초대형 IB 지정 안건은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다. 다만 초대형 IB의 핵심 업무인 발행어음 업무(단기금융업)는 한국투자증권 한 곳만 우선 시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발행어음이란 증권사나 종합금융회사가 영업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회사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일반 투자자들에게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 단기 금융상품이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초대형 IB는 자기자본의 두 배까지 어음을 발행할 수 있으며 이렇게 마련한 자금은 기업 대출이나 비상장사 지분 투자, 부동산 금융 등에 쓸 수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한국투자증권만 모든 심사가 마무리됐고 이에 따라 이달 초 안건을 올린 상황"이라며 "심사를 보류한 삼성증권을 제외하고 나머지 증권사 3곳에 대해서는 추가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기자본 7조1498억원으로 대형 증권사 중 가장 몸집이 큰 미래에셋대우는 유로에셋투자자문 옵션상품 불완전 판매 혐의에 발목을 잡힌 상황이다. NH투자증권은 국정감사에서 지적됐던 케이뱅크 인허가 관련 의혹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증권은 대주주 적격성 기준 탓에 심사가 보류됐다.
초대형 IB 출범으로 증권업계는 일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을 시작으로 나머지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등 4곳도 잇달아 초대형 IB와 관련한 업무를 확대할 예정이고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자기자본이 각각 3조1680억원, 3조1503억원인 메리츠종금증권과 신한금융투자 등 자기자본 3조원대 증권사도 다음 후보군으로 꼽힌다.
한국투자증권은 자기자본의 200%까지 발행어음을 조달할 수 있는 단기금융업을 통해 초대형 IB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종합금융투자실'이라는 별도의 운용부서를 신설해 신사업을 준비해왔다. 금융투자업계는 금융 당국의 인가 후 11월 발행 규모 5000억원을 가정하면 조달금리 1.8%에 마진 150bp(1bp=0.01%포인트)로 약 57억원의 신규 수익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강승건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국투자증권은 다른 증권사 대비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별도의 운용부서를 통해 신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던 만큼 초기 단계에서 1조원 규모까지 사업을 빠르게 확대할 수 있을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나머지 대형 증권사도 외국환 업무를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초대형 IB로 지정되면 외국환 업무 범위가 확대되고, 대출자산의 위험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새로운 영업용순자본비율(NCR) 지표 적용이 가능해 만기 1년 이상 대출에서 부담이 완화된다. 대형 증권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다른 4곳의 대형사도 심사를 거쳐 순차적으로 단기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우선 할 수 있는 외국환 업무 등을 추진해 경쟁력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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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초대형 IB의 신용공여 범위를 자기자본의 100%에서 200%로 확대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데다 은행권의 막판 반발도 거센 상황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당초 초대형 IB의 신용공여 한도를 200%로 확대하면서 대상을 중소기업으로 한정하는 개정안을 처리할 계획이었으나 보류했다.
금융 당국의 초대형 IB 지정을 앞두고 은행권의 반발도 거세다. 은행연합회는 최근 발행어음업의 경우 모험자본 공급이라는 초대형 IB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인가를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계 간 형평성과 건전성 규제에 대한 보완책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금융투자협회는 "24조원 규모의 모험자본 공급이 가능하고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이라며 맞불을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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