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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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다도해(多島海)가 떠오릅니다. 꽃봉오리처럼 어여쁜 섬들이 눈에 밟힙니다. 지난 계절에 보고 온 바다가 한강물 위에 겹쳐집니다. 이 가을날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집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강에서 바다가 보이다니! 연못과 호수를 닮은 바다입니다. '가고파'의 바다입니다.


 "내 고향 남쪽바다/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꿈엔들 잊으리오/그 잔잔한 고향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가고파라 가고파." 그 바다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파란 물 눈에 보이네'가 괜한 수사가 아님을 압니다. 꿈에라도 보이길 바라는, 사무치는 그리움의 표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노랫말에 실린 '사향(思鄕)'의 애틋함은 지은이의 '호(號)'에서도 읽힙니다. '노산(鷺山)'. 그 바다를 마주하는 산 이름이지요. 그러니까, 고향의 산과 이 시인의 이름은 같습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의 믿음입니다. 자신의 몸을 이룬 흙과 물에 대한 애정입니다. 조금 경박한 비유를 쓰자면, 메이커에 대한 자부심입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명이나 강산 이름을 '호'로 썼습니까. '율곡', '다산', '화담'…. 옛 사람들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향리 이름을 '호'로 쓴 대통령도 있었지요. '후광(後廣)'. 생가가 있는 섬마을, 후광리에서 따왔습니다. 후광리가 없었으면 '후광'이 없었고, 후광을 낳은 덕분에 '후광리'가 빛납니다.

 보고 자란 산과 물이 정신의 혈액을 만듭니다. 산의 높이, 물의 깊이가 인생과 세계의 크기를 재는 잣대의 눈금이 됩니다. 그러나 어느 산 어느 물이 똑같은 얼굴이겠습니까. 어떤 물은 들판만 달리고, 어떤 물은 산만 따라다닙니다. 그 산과 물에서 저마다 '보고 기억하는 부분' 꼭 그만큼이 각자의 고향입니다.


 오죽하면, 같은 '한강'을 동쪽 서쪽 다르게 부를까요. 옥수동 앞은 동호(東湖), 마포 앞은 서강(西江). 여주 사람들은 남한강보다는 '여강(驪江)', 영월읍 동편 주민들은 조양강보다 '동강'을 더 살갑게 여깁니다. 같은 강물은 없습니다. 암물 숫물 한데 어우러진다고 '아우라지', 양쪽 물이 만난다고 '두물머리'지요.


 아무리 길고 큰 강도 끊어서 보면, 연못이나 저수지와 다를 바 없습니다. 수 백리 먼 길을 흘러와 마을 어귀에 닿는 순간, 강은 호수가 되어 고단한 몸을 눕힙니다. 때마침 보름달이 뜨면, 둥글게 퍼지는 달빛을 받으며 하룻밤을 묵어갈 것입니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강마을의 밤이겠지요.


[윤제림의 행인일기 61]망원동에서  원본보기 아이콘
 호수처럼 아름다운 물가에 어찌 정자가 없겠습니까. 한양성 앞을 흐르는 한강변에만도 일고여덟 개의 정자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망원정(望遠亭)'. 망원동의 유래를 품고 있는 장소지요. 호텔 등급으로 치면 단연 '칠성(七星)급'입니다. 두 임금과 두 임금의 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무대인 까닭입니다.


 여기에 처음 집을 지은 사람은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 어느 날 세종께서 이곳에 납시었다가, 마침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를 반기며 '희우정(喜雨亭)'이란 이름을 붙였다지요. 그리고 한동안 버려두던 곳을 성종의 형 '월산대군'이 고쳐서 쓰게 됐을 때, 성종 임금이 지금의 '망원정'이란 이름을 내렸답니다.


 망원동이란 이름은 참 희망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인 느낌입니다. 반가운 비처럼, 희소식들은 죄다 이리로 모여들 것 같습니다. 먼 곳까지 잘 바라보이는 곳이니, 여기서는 먼 훗날도 또렷이 내다보일 것만 같습니다. 겸재 정선(鄭敾)도 '한강 진경(眞景)' 한 폭쯤은 여기서 그리지 않았을까요. 서강 최고의 전망대니까요.


 저는 지금 망원동을 걷고 있습니다. '젊은 벗'이 일러준 식당과 명소 몇 군데를 찾아다니며, 오래된 동네에 부는 새바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빛바랜 골목에 생기가 돌고, 조용하던 상점거리가 활기를 띱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재래시장의 부활! 젊은이들의 힘입니다.


 맛있는 냄새가 가득하고, 손님 부르는 소리가 떠들썩합니다. 채소와 과일에 윤기가 흐릅니다. 팔리지 않아서 제풀에 망가지는 물건이 많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군것질거리를 파는 노점 앞에도 장사진입니다. 살 것 많고 구경거리 많으니, 요기부터 하려는 사람들로 보입니다.


 모쪼록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흥미나 호기심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쉽게 흩어집니다. 금세 싫증을 내지요. 이 동네의 매력과 경기가 크게 살아나길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곳이 다른 곳과 비슷해지진 않기를 바랍니다. '망리단'이란 말부터 어서 추방했으면 합니다.


 이곳의 변화가 이태원 '경리단 골목' 비슷하다고, 그런 말이 쓰인다더군요. 얼토당토않은 표현입니다. 이치에도 닿지 않는 말의 조합에, 망원동은 자존심이 상할 것입니다. 망원동이 왜 이태원을 닮아야 합니까. 닮는 순간, 손님은 떠나고 주인은 고향을 잃습니다. 망원정이 망향(望鄕)의 정자가 될 수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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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원동은 '멀리 보고, 멀리 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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