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원의 시와 음악의 황홀 속으로 2] 러시(R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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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의 멤버는 세 명이다. 베이스, 게디 리(Geddy Lee). 기타, 알렉스 라이프슨(Alex Lifeson). 드럼, 닐 피어트(Neil Peart). 캐나다 출신의 이 밴드가 들려주는 음악. 그들을 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들의 앨범 하나를 기계에 넣고 들어보는 일. 나는 지금 『신호(Signals)』를 듣는다. 1번 트랙은 「세분(Subdivisions)」. 뮤직 비디오도 있다. 베이스와 신디사이저를 번갈아 연주하며 노래까지 부르느라 게디 리는 바쁘다. 80년대 들어서면서 신디사이저를 앞세운 뉴 뮤직(new music)이 득세를 한다. 70년대 후반은 디스코의 시대. 유럽의 프로그레시브 락은 사운드의 핵심으로 키보드를 사용했다. 그럼에도 동시대에 키보드를 운용하지 않았던 러시. 마법의 악기 신디사이저가 음악의 형식과 내용 변화에 강력한 동력으로 작동할 즈음, 키보드가 편제되어 있지 않던 러시도 그것을 음악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앨범답게, 여기저기서 건반의 선율이 물결친다. 3번 트랙 「화학(Chemistry)」이 흘러나온다. “신호 전송, 수신 메시지, 반응이 충격을 만들고, 보이지 않게, 자연적인 텔레파시, 에너지 교환, 반응이 충격을 만들고, 신비하게, 눈(eye)에는 나(I), 반응은 더욱 뜨거워지고, 둘에는 하나, 수면의 그림자, 수소에는 산소, 다른 것 없이는 흐름도 없고, 아 그러나, 어떻게 그들은 서로서로가 접촉을 만들어내는가, 전기? 생물학? 나에게 그것은 화학.” 화학적 결합으로 이끄는 접촉. 물,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로 이루어졌지만, 물의 속성에는 기체인 수소와 산소의 성질이 전혀 없다. 기체가 결합하여 액체가 된다. 그것이 화학이다. 음악은 ‘나’와 ‘너’에게 화학이다. “감정 전송, 감정 수용, 추상 속의 음악, 긍정적으로! 자연적인 공감, 시너지 효과 생성, 음악은 접촉을 만드네, 자연스럽게.”


키보드의 앞뒤에서 베이스가 출렁인다. 러시의 리듬을 표현할 수 있는 동사. 분절된 리듬이 빠른 속도로 시간을 재편하는 과정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게디 리의 베이스와 닐 피어트의 드럼이 결합한 다중리듬(polyrhythm)의 두께와 깊이가 산출하는 아름다움을 이해와 분석의 차원으로 돌리기 전에 무엇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디 리는 밴드의 음악을 전체적으로 리드한다. 밴드의 음악을 작곡하거나 편곡하는 과정에서 베이스 사운드가 핵심이 된다는 뜻이다.

어떤 코드가 등장한다 해도 그 코드의 루트 음에 머무는 법이 절대 없다. 톤 자체도 상당히 강력해서 기타나 키보드를 능가하는 화려한 연주를 보여준다.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시초가 되었던 게디 리의 베이스. 그가 작곡한 곡에서 사운드의 기초는 베이스 라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베이스 라인을 먼저 만든 후 멜로디를 삽입하는 방식의 사운드를 창조한다. 피크를 전혀 쓰지 않고 손가락만으로 펼치는 현란한 플레이와 하드한 톤은 압도적이다. 드러머 닐 피어트와 협연하는 리듬 섹션(예를 들면, 「바이터와 눈의 개(By-tor And The Snow Dog)」, 「일하는 사람(Working Man)」)도 자주 등장한다. 러시의 변박 리프는 1990년대 드림 씨어터(Dream Theater) 사운드의 초석을 다지는데 결정적인 모티브를 제공한다. (이 부분은 서지 사항을 알 수 없는 『핫 뮤직(Hot music)』의 옛날 자료를 참조함)


러시의 리듬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연주곡 「와이와이지(YYZ)」. 언어가 없는 연주곡의 느낌을 언어로 표현하다는 일의 덧없음 또는 불가능함 때문에 발생하는 열패감. 잘게 쪼개진 비트들, 마치 여름날의 시냇물이 난반사하는 부서진 햇빛 같은 음들의 흘러넘침. 몇 번의 변박을 거치면서, 알렉스 라이프슨의 기타가 부드럽게 활주하고, 드럼과 베이스는 서로 다른 리듬 파트를 연주하고 있지만, 우리가 듣는 것은 세 악기가 하나로 통합되는, 음악이라는 신비, 그것도 러시라는 아름다운 율동.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러시 최고의 연주곡이라고 생각한다. 곡이 끝나고 있다. 이 음악의 구성을 제대로 파악하기를 원한다면 최근의 라이브 클립을 감상해보는 것도 좋다. 2007년 10월 16~17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앨범 『뱀과 화살(Snakes & Arrow)』 투어로 연주되었던 라이브. 십 년 전인데, 이들은 생생하다. 연주를 즐긴다. 흔들림 없이, 오차 없이, 정확하게 한 음 한 음을, 정교하게 분할하면서, 리듬을 시간의 박동으로 치환한다. 게디 리는 베이스를 멈추고 키보드를 연주하다가, 다시 베이스로 리듬과 선율을 동시에 주관한다. 5/4박자로 출발, 5/8박자로, 뒤이어 연속적으로 5/4 → 6/4 → 4/4 박자로 변환하는 리듬. 음악이 시간을 자유롭게 가공하는 현실을 경험한다. 이들이 전유(專有)한 시간의 순수한 운동은 난해하게 분절된 휴지(休止)와 조화롭게 어울리면서, 시간의 재배치가 약동하는 쾌감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러시의 음악적 특성을 이 한 곡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한 가지 예일 뿐이다. 『반구(Hemisphere)』에 수록된 다른 연주곡 「라 빌라 스트란지아토(La Villa Strangiato)」도 들어보자.

(……)


나선형으로 배열된 소용돌이 속의 소용돌이
거대하고 복잡한 패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길을 잃는다
우리의 원인은 파악할 수 없다


양자 도약
시간과 공간 안에서
우주는 확장한다


(……)


자연과 유사한 과학
또한 길들여져야 한다
보존을 향한 관점으로
동일하게 주어진
완전 상태
그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시장의 캠페인이 아닌
표현으로써의 예술은
우리의 상상력을 사로잡을 것이다
동일하게 주어진
완전 상태
그것이 우리를 도울 것이다


가장 위험에 처한 종(種)
정직한 인간
여전히 절멸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세상을 형성하는 것
완전 상태
예민한, 열린 그리고 강력한


(……)


―「자연과학(Natural Science)」 가사 부분


바닷가의 파도를 보면서 자연의 순환을 생각하고, 우주의 구성 원리 중 하나인 프랙털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예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사색하게 하는 가사. 난해한 추상성으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내용이다. 드러머 닐 피어트가 작사한 텍스트의 수준 판단은 뒤로 미루자. 고유명사 러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가사의 시적(詩的) 특성이 음악과 결합하여 형용사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의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을 확인해보는 일의 즐거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살아남는 것
우리 자신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 살아 있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살아남는 것
우리 자신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 살아 있는 것
삭아버린 잿빛의 누더기들
해골들, 도망치고 있네
소리치는 경비병들과 연기 나는 총이
불행한 자들을 없애버릴 것인데
나는 손가락에 피가 흐를 때까지 철조망을 움켜쥘 것인데
치유할 수 없는 상처, 느낄 수 없는 심장
공포가 사라지기를 기원한다
내일이 오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모두 자유로워질 것인데
(……)
몇 일 몇 주 그리고 몇 달이 지나도
굶주린다고 생각하지 말라, 약해서 울 수밖에 없다 해도
교도소 정문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여기 해방된 자들
내가, 바라는 것일까
두려워하는 것일까
(……)
―「붉은 구역 에이(Red Sector A)」 가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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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압제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주체의 염원이 표현된 가사이다. 눈여겨볼 것은 ‘붉은 구역 A’라는 제목이다. 제목의 빨강은 전체주의적 폭력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것에서 해방되고 싶어 하는 화자의 욕망을 지시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혁명의 빛깔을 떠올려도 무방하다. 박해받는 자들을 위해 ‘나’는 피가 흐를 때까지 철조망을 움켜쥘 것이라는 표현에서 저항과 전복을 꿈꾸는 자의 결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러시의 가사가 지닌 문학성의 실체. 이 시를 읽지 말고 들어보자. 베이스가 아니라 기타가 주도한다. 게디 리는 키보드에 집중한다. 이 글의 시작에서 나는 3인조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멤버 셋이면 충분하다. 풍부하다, 아름답다, 강력하다, 진보적이다 같은 형용사로는 러시의 음악 세계를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다른 단어가 필요하다. 이들이 펼쳐 보인 문학 텍스트와 음악의 결합 양상을 제대로 느끼려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붉은 구역 A」를 듣고 있으면 붉은 심장의 박동이 떠오르고, 듣는 나는 낮게 파동 치는 힘을 흡수한다. 나는 러시의 음악이 ‘장대하다’고 생각한다. 프로그레시브의 원형이 여기에 있다.



[장석원의 시와 음악의 황홀 속으로 2] 러시(Rush) 원본보기 아이콘
장석원 약력 : 2002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집을 네 권(『아나키스트』, 『태양의 연대기』, 『역진화의 시작』, 『리듬』) 출간했지만, 음악 산문집 『우리 결코, 음악이 되자』(2010, 작가)를 시집만큼 아끼고 있다. 모든 종류의 음악을 사랑하는 황봉구 시인에게 지난 여름 King Crimson의 1집 LP를 선물 받고는, 작은 턴 테이블을 구입,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레코드를 다시 듣게 되었다. 벽장 속에 방치되어 있던 검은 비닐 재질 음악 저장 장치를 불빛 아래로 가져온 후, 음악의 나라에 다시 살기 시작했다. 현재, 광운대학교 국문과에서 학생들에게 시와 시론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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